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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구박 못참아 이혼 청구, 재산분할 몇 대 몇?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8)

A(1950년생, 남자)와 B(1951년생, 여자)는 1973년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이고, 그 사이에 자녀 3명(딸 45세, 아들 42세, 아들 40세)을 두고 있다. 공무원이었던 A는 봉건적인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혼인 초부터 B를 천대하면서 복종을 강요했고, B의 행동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하게 잔소리를 하고 일일이 간섭했다. B가 A의 말에 이유라도 달거나 변명을 하면 불호령을 내리고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등 B를 억압해 왔다. A는 경제권을 틀어쥐고 B에게는 빠듯하게 생활할 만큼의 돈만 지급했고, 의처증 증세가 있어 B의 바깥출입은 물론 친정 식구와의 만남조차 엄격히 통제하였으며, B가 다니는 사찰의 스님과 불륜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절에 다니는 것조차 금지했다.

A는 공무원을 사직하고 환경 관련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번창해 부동산 등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런데도 A는 B에게 일정액의 생활비 외에는 전혀 주지 않았고, 하루가 멀다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열고, 며칠씩 술집 여종업원을 데리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A는 이에 항의하는 B를 대구에 있는 딸 집에 가라고 내쫓은 후 일체의 생활비를 주지 않고 있다. A는 부동산 10여 건과 은행예금, 보험 등 100억 원 가까운 재산이 있지만, B의 명의로 된 재산은 예금 5000여만 원이 전부다.

B는 50년 가까이 참고 산 지난날을 생각하면 분통하고 억울해 눈물만 나온다. 늦은 나이에 이혼한 친구들을 보면, 매일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주민센터에서 하는 가요 교실도 다니면서 여유롭고 재미있게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같아 너무 부럽다. 장성한 자녀들도 이제는 어머니 뜻대로 하라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지만, 정작 B는 선뜻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다. A가 순순히 이혼에 동의해 줄 리도 만무하고, 이혼한다고 해도 재산을 나누어 줄 것 같지 않다.

이혼소송을 하려고 해도 지금까지 한 번도 법률적인 문제를 혼자 처리해 본 적이 없고, 변호사 비용이 얼마가 될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남들에게 밝히기도 두렵다. 또 이혼소송이 끝나 호적까지 정리되고 재산의 명의도 바꾸려면 한참이 걸린다. 당장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이 없어 방 한 칸도 제대로 얻을 수 없고, 생활비 마련도 막막하다. 자기들 살기 바쁜 자녀들의 신세를 계속 지기도 어렵다. 이혼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황혼이혼도 법률적인 면에서는 일반적인 이혼과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혼인의 지속 기간, 이혼의 시기, 부부와 자녀들의 연령, 상속에 대한 고려 등 보통의 이혼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할 부분도 있다. [중앙포토]

황혼이혼도 법률적인 면에서는 일반적인 이혼과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혼인의 지속 기간, 이혼의 시기, 부부와 자녀들의 연령, 상속에 대한 고려 등 보통의 이혼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할 부분도 있다. [중앙포토]

결혼 기간이 수십 년이 되고 60, 70세가 넘어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 이혼 또는 고령 이혼은 매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 기간도 따라 늘어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라고 한다. 종래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경제권의 독점, 반복된 폭언과 무시로 오랫동안 불만이 쌓여 있던 아내가 자녀 뒷바라지를 끝내고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 제2의 인생을 찾는 방편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고 연금 분할제도 등이 생기면서 은퇴 후 경제적·육체적으로 내리막을 겪는 남편이 구박과 냉대를 받다 못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이혼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령의 재혼 부부는 전처 소생과의 상속 갈등을 예상해 이혼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혼에 대한 사회적 평가, 자녀들 생각,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선뜻 이혼을 마음먹지 못하는 부부도 있다. 황혼이혼도 법률적인 면에서는 일반 이혼과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혼인의 지속 기간, 이혼의 시기, 부부와 자녀들의 연령, 상속에 대한 고려 등 보통의 이혼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할 부분도 있다.

이혼할 것인지, 이혼한다면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에 대해 부부 사이에 서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 문제를 가정법원에 가져갈 수밖에 없다.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가 외도하였다거나, 배우자로부터 심한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을 받았다거나,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혼인생활을 파탄으로 이끈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성격 차이, 권위적인 태도, 경제권의 독점, 반복된 폭언과 무시 등은 그 하나하나만으로는 독립적인 이혼사유가 되기에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어느 한쪽에 외도나 폭력과 같은 결정적인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이 된 경우 이혼이 허용되기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 법원은 혼인 관계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쪽(이른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의 외도, 심한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등 상대방에게 혼인생활을 파탄으로 이끈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중앙포토]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의 외도, 심한 폭행이나 학대 또는 모욕, 배우자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등 상대방에게 혼인생활을 파탄으로 이끈 명백한 잘못이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중앙포토]

황혼이혼에서 재판상 이혼이 받아들여질 것인지 아닌지가 문제 되는 것은, 대체로 경제력이 있으나 잘못을 한 남편과 경제력 등의 문제로 이혼거부를 무기로 가지고 있는 부인의 경우가 많다. 사례에서 A의 잘못과 그것이 혼인관계 파탄에 미친 영향이 비교적 분명해 B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여졌다.

한편 황혼이혼에서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재산분할이다. 이는 이혼 후에 각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있는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재산분할은 부부가 함께 형성한 재산을 청산하고, 이혼 후 상대방을 부양하는 기능을 한다.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잘못은 실제 재산분할 재판에서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지는 않는다. 재산분할의 범위는 분할할 재산을 확정하고, 그 대상 재산에 기여도(분할 비율)를 반영해 정해진다.

분할 대상 재산은 부부생활을 한 기간 둘이서 힘을 합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으로 한정되므로, 혼인 전부터 일방이 혼자 명의로 가지고 있던 재산, 혼인 중에 각자의 부모로부터 상속이나 증여받은 재산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러한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부부 중 다른 쪽이 그 재산의 유지에 협력해 감소를 방지하였거나 가치를 높이는데 협력하였다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분할 비율은 개개의 재산에 대해 분할 비율을 정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의미한다. 공동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되, 혼인생활의 과정 및 기간, 각자의 나이와 직업, 경력, 경제력과 소득, 혼인 파탄의 경위, 부부의 나이,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미성년자에 대한 양육 여부, 양육비가 잘 지급될 수 있을지, 분할대상 재산에 명시적으로 포함할 수 없는 유무형의 재산 등이 있는지, 일방 배우자가 재산을 낭비하거나 재산적 손실을 입혔는지, 일방 배우자의 부모나 형제자매가 재산적 도움을 주었는지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많은 부부들은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나 동반자가 되어주길 원한다. 하지만 살아온 삶과 처한 사정이 다르기에 어떠한 선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진 pixabay]

많은 부부들은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나 동반자가 되어주길 원한다. 하지만 살아온 삶과 처한 사정이 다르기에 어떠한 선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진 pixabay]

공무원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국민연금 등 은퇴 이후를 보장하는 연금은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연금수급권자가 아닌 다른 쪽 배우자가 연금을 분할해서 직접 받을 수 있다. 사례에서 B는 2년여의 재판 끝에 A와 B의 순재산 합계액의 약 40% 정도를 분할 받았다.

많은 부부가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해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나 동반자가 되어주길 원한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한 사랑, 배려, 희생보다는 함께 사는 자체가 고통이고 절망이 되어 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사연이 없는 부부가 없고, 살아온 삶과 지금 처한 사정이 각각 다르기에 어떠한 선택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황혼기에도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혜와 서로에 대한 희생이 필요하고, 인생의 황혼기에 하는 이혼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제2의 출발이 될 수도 있지만 외롭고 힘든 고통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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