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C 조사국 “배터리 소송, SK요청 2건 기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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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이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ITC 재판부에 제기한 두 건의 요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ITC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LG·SK 특허 소송에 영향 줄 듯 #SK “기술탈취 없었다” 계속 주장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불공정수입조사국이 ITC 재판부에 전달한 의견서 중 일부. [사진 ITC]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불공정수입조사국이 ITC 재판부에 전달한 의견서 중 일부. [사진 ITC]

미국 ITC는 독립적인 준사법 연방기관으로 독자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으며,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배터리 기술유출 특허 침해 소송을 조사하고 있다. 변호사 등 전문가 집단으로 꾸려진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접수된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와 법률적 판단 등을 담아 재판부에 제출한다. ITC 행정판사는 조사국 의견을 상당부분 참고해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 의견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2월 중순 ITC에 두 건의 요청서를 냈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LG화학이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배터리 영업비밀 중에서 20가지 이상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별도로 제출한 요청서에선 “소송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소송을 더는 끌지 말고 약식 판결을 내려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한 요청 두 건 모두에 대해 ‘기각(deny)’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재판부에 보냈다.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영업비밀에 대해서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번 의견서를 통해 LG화학이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영업비밀이 137개에 이른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됐다.

의견서에선 SK이노베이션이 2022년 가동을 목표로 미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도 언급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배터리 기술을 조지아주 공장 가동을 위해 수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의견서는 “SK이노베이션이 확정적으로 이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이에 앞서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지난해 11월 LG화학이 제기한 조기패소 판결 요청에 대해서도 재판부에 두 차례에 걸쳐 “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ITC 불공정수입조사국은 당시 “SK이노베이션이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아 증거를 훼손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일부 증거가 보존되지 못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ITC에서 “기술 탈취는 없었다”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4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ITC의 최종 결정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사소송과 국내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ITC가 의견서를 받아들여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려도 반전의 여지가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을 늘리고 싶어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론이 나길 원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배터리 소송은 결국 거부권을 가진 미 무역대표부(USTR)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ITC 결과에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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