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격전 중에 칼을 놓아버린 흑7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32강전
[제5보(71~76)]
白 李世乭 9단 | 黑 孔杰 7단

백△의 강수가 떨어진 뒤 시끌벅적하던 검토실은 폭풍전야의 적막감이 이어졌다. 중앙 백 다섯점은 흑A로 씌우면 포위망에 갇힌다. 그러므로 쿵제는 A로 올 것이다. 이세돌9단에겐 무슨 대책이 있을까.

그런데 쿵제의 장고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볼 것 없는 장면이라고 모두들 느끼고 있는 대목에서 쿵제는 깊은 사념에 잠겨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둑판 위에 쿵제의 손이 비쳤고 모두들 침을 삼키며 하회를 기다리는데 아니 이게 웬 일인가! 저 멀리 71에 흑돌이 놓이는 것이 아닌가.

성미 급한 김성룡7단이 "이상하네요. 참 이상하네요"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71은 격전의 와중에 갑자기 칼을 던져버리고 멀리 낚시를 하러 떠난 느낌을 준다.

이세돌9단의 72는 거의 노타임으로 놓였다. 벼랑 끝에 몰렸던 李9단은 이 한 수로 숨을 돌렸다. 71은 정말 이상하다. 백이 그쪽을 손빼도 무슨 강력한 후속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73으로 공격을 재개했는데 이 놓쳐버린 한 박자 때문에 공격이 잘 될리 없다. 게다가 73도 밋밋했다. '참고도' 1로 치받아 3,5로 절단하는 것이 실전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이런 거의 초보적인 수법들을 중국의 신인왕 쿵제가 놓치고 있다는 게 참 이상하다. 바둑은 역시 상대적인 게임이다.

이세돌이란 존재가 앞에 앉아있고 그걸 의식하다 보니 71과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수가 등장했다. 75도 실수라지만 71의 엄청난 방향착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