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미래? 콤콤 오락실 들어앉은 용산 열정도 골목 봐라"

중앙일보

입력 2020.01.28 11:07

업데이트 2020.01.28 22:39

고층 건물 숲 사이, 연륜이 물씬 느껴지는 건물 앞에서 민욱조 크립톤 벤처스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시작에 앞서, 건물 뒤편의 골목부터 돌아봐야 한다며 길을 안내했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87길, 열정도 골목으로 알려진 곳이다.

민욱조 크립톤 벤처스 대표는 "로컬을 바꾸려면 변화를 이끌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말했다. [사진 크립톤 벤처스]

민욱조 크립톤 벤처스 대표는 "로컬을 바꾸려면 변화를 이끌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말했다. [사진 크립톤 벤처스]

이 골목은 2001년 용산 제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의 일부로, 문배업무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되면서 빠르게 노후화했다. 변화가 생긴 건 2014년 11월. 요식업을 주로 창업하는 청년들이 모인 ‘청년 장사꾼’이 이곳에 6개의 음식점을 동시에 열면서부터다. 결이 비슷한 식당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으며 골목 자체가 브랜드가 됐고,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과 맞물려 이색상권이 됐다.

“저기 보세요. 옛날 오락실 보이죠? 콤콤 오락실인데 여기랑 무척 잘 어울리죠."
“골목 안쪽에는 일본 청년들이 일본 라멘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간판도 없이 말이죠.”
“이곳은 웹툰 하우스에요. 크리에이터들은 크리에이터들끼리 모여 있어야 신나죠.”

30여분의 골목 투어를 끝내고 그가 본부라 일컬었던, 건물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골목의 변화를 보면, 로컬의 가능성이 보인다"며 "일과 여가의 변화가 결국 주거의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와 로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크립톤 벤처스 외에 하드웨어 엑셀러레이터 N15, 벤처스퀘어 등 여러 곳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맡아 운영하는 그는 최근 로컬에 투자하는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폴인스터디 : 라이프스타일의 미래, 로컬에서 찾다〉에서도 로컬의 가능성에 관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속사정을 잘 알고 계시네요. 
“여기를 처음 알게 된 건, 열정도팀이 찾아와 재무, 투자 쪽 부분을 도와달라고 해서였어요. 그것도 재능기부로 말이죠(하하). 그런데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가능성이 높아 보이더라고요. 열정도 있고, 배짱도 있고. 그래서 합류해 골목 단위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죠. 골목을 소개한 이유는 제가 로컬의 가능성을 보았던 곳이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일하는 청년 장사꾼들을 저는 죽은 상권을 살리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합니다.” 
재개발 이슈로 방치된 서울 용산구 백범로 87길을 새롭게 만든 열정도팀. 민욱조 대표는 이들을 지역을 바꿀 로컬 크리에이터로 본다. [중앙포토]

재개발 이슈로 방치된 서울 용산구 백범로 87길을 새롭게 만든 열정도팀. 민욱조 대표는 이들을 지역을 바꿀 로컬 크리에이터로 본다. [중앙포토]

로컬 크리에이터요? 
“지역의 특징을 살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사람들을 말하죠. 열정도팀은 노후화된 건물이 많다는 이 일대의 특징을 살려, 이색상권을 만든 사례입니다. 강원도 바람을 일으킨 서핑 샵을 운영하는 분들도 로컬 크리에이터죠. 이번 폴인스터디 강연자로 나오는 위크앤더스는 지역의 관광 콘텐츠와 웰니스라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접목해 숙박업으로 연결한 회사죠. 이런, 비즈니스가 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많이 육성하는 것이 로컬의 미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시킬 사람이 먼저라는 말씀이네요.
“맞아요. 예전에 도시계획을 할 때, 건물이나 도로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 설계했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했죠. 건물이 잘 만들어졌다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거든요. 심지어 이런 방식은 지역 특징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도시를 비슷하게 만들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편리’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가 이기기 어렵죠."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콘텐츠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디지털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어요. 4차 산업혁명이다, 아니다, 갑을박론 말이 많은데요. 비즈니스 관점으로 보면, 지금은 디지털이 일상생활을 변화시키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금융·유통·관광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죠. 예전에는 새로운 것이 나와도 알릴 길이 없었어요. 지역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니 앞선 트렌드를 보일 수도 없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잘 만들면 전국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옵니다. 진정한 콘텐츠의 시대가 된 거죠.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이미 많은 콘텐츠가 존재하고 있어요. 건물이 집약된 자산이라면, 콘텐츠를 무궁무진하게 확장 가능한 자산이죠. 이런 환경이 저 같은 투자자에겐 최고의 기회가 되고요."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렇죠. 정주 인구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죠. 그러려면 일자리도 있어야 하고요. 골목을 돌 때, 웹툰 하우스를 보셨죠? 판교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이게 가능한 게 디지털로 일하기 때문이에요. 웹툰 하우스가 생기면서 여기도 변화가 생겼어요. 점심 상권이 생겼죠. 점심 장사를 하는 분들이 많아지니, 지금은 인근 아파트에서도 점심을 먹으러 오는 분들도 계세요. 도심 안에 있고, 주거 환경도 수준 이상이니 웹툰 하우스나 작가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판교보다는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이곳이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주죠. 이렇게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디지털로 일하는 회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로컬이 로컬만이 가진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준다면, 이런 회사들은 이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해요. 특히 밀레니얼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죠.”
또 다른 사례가 있을까요.
“초기에 투자한 자동화 CS(Customer Service, 고객 서비스) 회사가 있어요. 고객 대응은 디지털로 일하는 회사가 많아질수록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분야죠. 앞으론 상당 부분 인공지능 같은 기술로 대체되겠지만,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 그동안의 노하우로 사람과 기술에 투자하면 시장점유율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이 회사 대표님에게 사옥 이전을 제안 드렸어요. 먼저 서울 안에서 이전할 경우, 지역별로 수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뮬레이션해서 수치로 보여드렸죠. 그리고 만약, 강원도로 내려간다면 더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이런 회사는 꼭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문제는 사람을 구하는 일인데, 강원도에는 대학이 많아 사람 찾기도 좋죠. 이렇게 회사가 내려가고,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지역 콘텐츠를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정주 인구도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동안, 지자체에서도 일자리 창출 계획을 많이 세웠는데요. 
“과거에는 도시별로 한 가지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많았어요. 사과가 유명하면 사과로, 철강이 유명하면 철강으로 육성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이상한 겁니다. 도시는 직업의 레이어(layer·층위)가 많아져야 해요. 옆집도, 뒷집도 앞집도 다 사과농장을 하면, 여기서 사는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접하기 힘들어요. 옆집이 사과농장을 하면 앞집은 유통판매업을 하거나 해야 하죠. 도시의 장점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지자체에서는 도시를 창업한다는 관점으로 넓게 포괄적으로 봐야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어요.”
강원도에 위치한 위크앤더스는 커뮤니티 호텔을 표방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위크앤더스]

강원도에 위치한 위크앤더스는 커뮤니티 호텔을 표방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위크앤더스]

시작이 어려운 것 같아요.  
"로컬 크리에이터가 먼저냐, 회사가 먼저냐의 문제는 닭과 달걀 같은 문제죠. 순서가 중요하진 않아요. 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지역이 가진 특징을 잘 고려해 이 두 가지가 선순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이런 순환이 로컬의 미래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투자자 관점으로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약점이 많아요.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할 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대부분 없거든요. 그래서 전 주로 펀드를 조성해 투자해요. 또 로컬 크리에이터 연대를 만들어 그 연대에 투자하죠. 일종의 크러스트죠. 그래야 규모 있는 다른 사업을 붙일 수 있어요. 최근 태양광 회사에 투자할까 고민하고 있는데요, 이 회사는 통신사 기지국처럼 태양광 기지국을 만들려고 해요. 로컬 크리에이터 연대가 있으면 이런 곳과 조인이 가능하죠." 
스타트업 아이디어로 성장하는 도시라는 키워드가 여기서 나왔군요.  
“도시 창업은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판을 벌이는 것과 같아요. 소비자는 변했고,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가 넘치고, 지역은 인구가 줄어든 문제에 봉착했죠. 변화를 만들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굿 타이밍이죠. 지금 필요한 건, 스타트업이 가진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결해 로컬에서 비즈니스가 되게 만들어내는 관점입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하죠. 그런 면에서 〈폴인스터디: 라이프스타일의 미래, 로컬에서 찾다〉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폴인스터디 : 라이프스타일의 미래, 로컬에서 찾다〉에서는 민욱조 크립톤 벤처스 대표 외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알플레이의 류은효 대표, 라이프스타일 스테이 위크앤더스 염승식 공동대표, 플리마켓 마켓움의 손지민 대표 등이 연사로 참여해 변하는 라이프스타일의 틈새를 공략해 로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모델을 만든 방법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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