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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쓰인 "필요 없으면 사지마"···밀레니얼 노린 거꾸로 마케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패션업계 강타한 친환경 트렌드

자사의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캡쳐]

자사의 제품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캡쳐]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unless you need it).’

옷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이런 딱지가 붙어있다면 느낌이 어떨까.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실제로 이런 광고 카피를 사용해서 화제가 됐다. 재킷 한 벌을 만드는데 물(135L)을 소비해서 목화를 생산하고 탄소(20파운드)가 배출되면서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옷이 아니라면 되도록 사지 말라는 뜻이다. 파타고니아는 제품의 70%를 플라스틱병 등 재활용 소재로 제조하고, 매출의 1%를 일명 ‘지구세(稅)’라고 칭하며 자연환경 보존에 사용한다.

기업이 제품을 판매해서 이익을 거두는 건 당연한 생리다. 그런데도 파타고니아가 이런 카피를 도입한 건 매출 확대의 목적이 환경 보호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보호하는데, 돈을 쓰기 위해서 옷을 판다고 주장한다.

의상은 물론 무대 목재까지 재활용

크리스챤 디올이 프랑스파리에 설치한 런웨이. 흙바닥 자체를 런웨이로 활용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크리스챤 디올이 프랑스파리에 설치한 런웨이. 흙바닥 자체를 런웨이로 활용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이처럼 환경 보호가 최근 패션 업계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파리패션쇼를 보면 이런 트렌드가 두드러진다. 크리스챤 디올이 파리 서부 롱샴 경마장에 설치한 런웨이는 흙바닥과 잔디 양쪽으로 나무를 심어놓은 공간이었다. 자연 환경 자체를 런웨이로 활용한 것이다. 런웨이 양쪽으로 늘어선 160그루의 나무는 런웨이가 끝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1회성 재료로 나무를 활용한 게 아니라, 런웨이를 꾸미는 기간 잠시 나무를 빌려온 셈이다.

또 다른 명품 브랜드 랑방은 세느강 강변의 한 박물관 정원에서 런웨이를 설치했고, 쿠레주는 생마르탱운하에서 해초를 원료로 제작한 장식을 선보였다. 모두 환경 보호를 고려한 패션쇼다.

랑방은 세느강 강변의 한 박물관 정원에서 런웨이를 설치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랑방은 세느강 강변의 한 박물관 정원에서 런웨이를 설치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루이뷔통은 아예 파리패션쇼 주제를 ‘환경을 위한 관용과 보호’로 설정했다. 무대 제작에 사용한 목재를 100% 재활용 가능한 방식으로 벌채했고, 패션쇼 종료 이후 이 나무를 다시 뜯어 재활용했다. 루이뷔통은 세계 최대 산림인증시스템(PEFC)으로부터 이와 같은 과정을 인증받기도 했다.

이밖에 휴고보스는 올해 파리패션쇼에서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친환경 가죽(피나텍스·Pinatex)을 소재로 사용했고, 멀버리도 식품 부산물로부터 추출한 소재로 만든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개념 소비자가 만든 개념 디자이너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할리케이는 청바지를 에코백으로 제작했다. [사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할리케이는 청바지를 에코백으로 제작했다. [사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이처럼 패션 업계에 친환경 붐이 부는 건 최근 젊은 세대가 친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이 부여한 가치를 중시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한다.

이처럼 달라지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 패션 업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패션업계의 설명이다. 박남영 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사업부장(상무)은 “글로벌 패션업계가 친환경 소재 개발에서 나아가 생산·유통·포장 등 전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패션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8회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두드러졌다. 청바지 소재 재활용 기업 할리케이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소비자가 낡은 청바지 5장을 가져오면 이를 에코백으로 제작해주기도 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주최한 디자인하우스는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확산하면서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패션 브랜드가 이번 페스티벌에 대거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준지 파리컬렉션. 이 의상에 사용한 가족은 모두 친환경 가죽이다. [사진 삼성물산]

준지 파리컬렉션. 이 의상에 사용한 가족은 모두 친환경 가죽이다. [사진 삼성물산]

'비건 레더'를 아십니까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제조하는 패션 브랜드 준지도 올해 파리패션쇼에서 1980년대 패션을 재해석한 가을·겨울 신상품을 발표하면서 친환경 가죽을 접목했다. '비건 레더(Vegan Leather)'라고 부르는 가죽은 친환경 공정을 거쳐서 제작한 가죽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준지가 파리의과대학에서 선보인 코트·바지·치마 등 신상품은 모두 제조 공정에서 친환경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1일부터 다양한 빈폴 브랜드에서 순차적으로 친환경 제품을 선보인다. 당장 이달부터 남성복 제품(빈폴맨)이 모든 상품에 친환경 발수제와 대체 충전재를 적용했다. 또 폐페트병을 재생한 충전재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빈폴의 여성복 브랜드인 빈폴레이디스도 같은 날 폐어망을 활용한 트렌치코트와 재킷·패딩을 출시했다. 역시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자체 개발한 충전재를 사용한 의류다. 온라인 전용 아동복 브랜드 빈폴키즈도 남·여 아동복 점퍼에 재생 가능한 충전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빈폴이 21일 출시한 친환경 제품라인 'B-Cycle.' [사진 삼성물산]

빈폴이 21일 출시한 친환경 제품라인 'B-Cycle.' [사진 삼성물산]

삼성물산·코오롱·태평양 앞다퉈 친환경 인증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국내 최초로 재활용 의류 브랜드 ‘래;코드(Re;code)’. [사진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국내 최초로 재활용 의류 브랜드 ‘래;코드(Re;code)’. [사진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은 지난 2012년 국내 최초로 재활용 의류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선보였다. 기존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판매했던 의류나 군복·낙하산 등 군용 섬유, 혹은 에어백·카시트 등 산업용 섬유를 재활용해서 다시 옷으로 만든다. 이처럼 섬유를 재활용하면 연간 40억원의 재고 소각 비용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설명이다.

컬럼비아·언더아머 등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인 태평양물산도 21일 친환경 의류 브랜드(리:온·RE:ON)를 선보였다. 리:온은 소재·원단·디자인·의류 제조 전 과정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작 방식을 적용한다. 임석원 태평양물산 대표는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패션 시장에도 친환경 소재가 중요하다”며 “친환경 소재 개발에 지속해서 투자하겠다”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파리의상조합

지난 2018년 준지가 파리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 [사진 삼성물산]

지난 2018년 준지가 파리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 [사진 삼성물산]

파리의상조합은 파리패션쇼를 주최하는 협회다. 연 2회 열리는 파리패션쇼에서 개별 브랜드가 진행하는 패션쇼 장소와 시간을 결정한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되려면 기존 2개 이상의 정회원사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크리스챤디올 등 명품 브랜드부터 끌로에, 미우미우 등 신진 브랜드까지 이름난 브랜드가 대부분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다.

국내 패션 브랜드 중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패션브랜드 준지(JUUN.J)와 패션디자이너 우영미의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가 유이하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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