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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18번’ 집값은 잡는다? 文정부 조급증 뒤엔 ‘盧트라우마’

중앙일보

입력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0월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경제민생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부동산 안정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0월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경제민생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부동산 안정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가장 큰 가중치를 두는 이유는 첫째, 참여정부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 문제에서 문재인 청와대에 ‘노무현 트라우마’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노무현 정부의 실패 경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국민이 집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늦지 않게 세우도록 하자”며 취임 첫해부터 부동산 문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은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지만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도권 집값은 56%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리 당 후보를 500만 표 차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 건 부동산 정책 실패 탓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종부세 실패 때문에 유동성 규제 앞세워

이런 경험으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정권 재창출의 가늠자로 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만에 부동산 대책이 18번이나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4년 동안 부동산 대책을 13번 내놓았다. 그만큼 현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실패한 정부’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인식이 강해졌다.

물론 노무현 정부 실패의 학습 효과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라는 주택 보유세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은 일부 계층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당시 종부세 설계에 참여했던 현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이슈가 종부세에 매몰돼 버리는 바람에 다른 대책이 시장에서 아예 기를 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초고강도 대책으로 불리는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후 약 한 달을 맞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급매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초고강도 대책으로 불리는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후 약 한 달을 맞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급매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현 정부는 특정 정책을 강조하기보다 여러 정책을 종합적이고 연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7월 “(부동산 정책은)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조합)로 고려돼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종부세 경험 때문에 조세 정책은 뒷순위로 밀렸다.

대신 노무현 정부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유동성 규제를 문재인 정부는 전면에 내세웠다. 2006년 11월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강화 대책을 내놓은 뒤 집값은 잡히기 시작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2017년 6월 19일)도 LTV, DTI를 각각 10%포인트씩 낮추는 것이었다.

“노무현 때와 규제 판박이, 강도는 더 세져”

하지만 ‘노무현 트라우마’가 부동산값 폭등을 더 유발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가 약한 규제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고 보고, 그보다 더 강한 규제를 편 게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가 서울 강남권 17개 아파트 단지를 분석한 결과, 3.3㎡(1평)당 평균 가격은 노무현 정부(5년)에선 2257만원, 문재인 정부(2.4년)에선 2034만원 상승했다. 연간으로 비교할 때 문재인 정부 상승폭(810만원)은 노무현 정부(450만원)보다 1.8배 높다. 비강남권 역시 문재인 정부가 연 371만원으로 노무현 정부 183만원보다 2배가 높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규제 정책과 판박이다. 다만 그 강도가 더 강해졌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 공급을 확대하거나,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책은 적고 규제만 늘리니 시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가격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경실련(17개 단지 조사)]

서울 강남권 아파트 가격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경실련(17개 단지 조사)]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현 정부 들어서 서울과 지방, 강남과 비강남 사이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했다. 정부 정책의 실패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강남 등을 콕 집어 규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투자자들이 정부가 규제하는 쪽을 오히려 투자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를 투기꾼으로 보는 시각은 더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를 발표하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노 전 대통령도 집권 3년 차인 2005년 국회 국정 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는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원장은 “교통 좋고, 좋은 학교 있는 곳에 살고 싶은 것은 일반적인 생각인데 정부는 이런 사람들마저 투기꾼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낮으니 정책이 실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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