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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앤서니 홉킨스, 브래드 피트, 송강호는 정말 조연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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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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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의 기대대로 ‘기생충’의 송강호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더라면, 정말 멋진 그림이 나올뻔했다. 다음 달 시상식에서 수상자 발표 직전 TV 화면에 함께 비칠 배우들이 워낙 쟁쟁하고 화려해서다. 이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 있는 톰 행크스, 앤서니 홉킨스, 알 파치노를 비롯해 브래드 피트, 조 페시 등 이름만 보면 혹시 주연상 후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실은 이들이 이번에 출연한 영화를 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앤서니 홉킨스의 ‘두 교황’은 실존 인물이자 서로 생각과 취향이 전혀 다른 두 교황의 만남에서 빚어지는 긴장, 그런데도 상대에 귀를 기울이며 대화를 이어가는 전개가 중심이다. 두 교황 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텐데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는 남우조연상, 프란체스코를 연기한 조너선 프라이스는 남우주연상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나란히 주연을 맡은 영화인 줄 알았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도 각각 조연과 주연으로 나뉘어 후보가 됐다.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 ‘아이리시맨’ 조 페시·알 파치노,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브래드 피트, ‘두 교황’ 앤서니 홉킨스, ‘어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톰 행크스. [AP=연합뉴스]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 ‘아이리시맨’ 조 페시·알 파치노,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브래드 피트, ‘두 교황’ 앤서니 홉킨스, ‘어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톰 행크스. [AP=연합뉴스]

이는 할리우드가 주·조연 구분에 엄격해서가 아니라 시상식 후보 지명을 위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로 설명되곤 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과거에는 한 영화에서 두 명의 주연상 후보가 종종 나왔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1992년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가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같은 영화로 주연상 경쟁을 벌여 표를 분산시키기보다 한 명은 주연상 부문, 다른 한 명은 조연상 부문 후보로 미는 편이 승산이 있다는 게 할리우드의 상식이 된 것 같다. 미국 언론은 이처럼 주연 배우가 조연상 후보가 되는 걸 ‘부문 사기(category fraud)’라는 다소 부정적 표현으로 부른다. 조연상이 주연들로 붐비면 정작 조연으로 주목받아야 할 배우들의 자리는 좁아질 수 있다.

최선의 경우는 주연급 배우가 주연만 고집하는 대신 출연 분량이 적은 진짜 조연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 관객의 쾌감도 올라간다. 반대로 낯선 배우들이 뜻밖의 호연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올해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기생충’은 남녀 주·조연 등 연기상 부문은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이런 점에서도 뛰어난 영화다.

좀 의아했던 것은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가 후보 지명 운동에서 송강호를 남우조연상 후보로 내세운 점이다. 배우 한 사람의 특출난 연기 대신 여러 배우의 연기가 고루 빛난 영화란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송강호가 조연이라니 과연 이 영화의 주연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이후남 문화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