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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가 없는 북한 개별관광 허용은 잘못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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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개별관광 허용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이에 대한 유보적 입장을 밝히면서 그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한·미 동맹에도 적잖은 상처를 낼 기세다.

국제적 대북 제재 공조에 큰 구멍 #북한이 선뜻 수용할지도 미지수 #할 말 한 해리스 대사 때리기 안 돼

정부는 개별관광의 경우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므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논리를 편다. 개별관광이란 지렛대로 침체에 빠진 남북 교류에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그래야 뚝 끊긴 북·미 대화도 재개될 동력이 생길 거란 입장이다. 우리가 북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적 발상이다.

북한 개별관광이 유엔의 제재 대상에서 빠진 건 사실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떼 지어 북한 관광지에 몰리는 것도 이 덕분이다. 그럼에도 아무 조건 없이 개별관광을 허용하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2018년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이후 아직 핵무기, 미사일 하나 폐기된 게 없다. 그간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추진해 왔다. 비록 유엔 제재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개별관광을 허용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에 큰 구멍을 낼 게 뻔하다. 개인적 여행 비용은 적더라도 이게 쌓이면 가뭄 속 단비 같은 적잖은 수입원이 될 게 분명한 까닭이다.

이런 우려에도 정부가 굳이 개별관광을 풀겠다고 한다면 최소한 북한 측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의미 있는 조치를 얻어내야 한다. 핵실험 시설 폐쇄든, 군사훈련 축소든 알맹이 있는 사안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그렇지 않고 맨입으로 개별관광을 허용한다면 또 다른 굴욕 외교, 퍼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개별관광을 허용한다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만약 북한이 코웃음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이런 큰 망신이 없다.

설사 북한이 우리 관광객을 받기로 했다 해도 이들의 신변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는 또 다른 난제다. 우리에겐 2008년 금강산에 갔던 여성 관광객이 북한군에게 피살당한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한국 관광객이 중국 단체관광단에 끼여 북한에 갔다 변을 당할 경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적잖은 문제로 해리스 대사가 “금강산 등 북한 개별관광을 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거쳐야 한다”고 밝힌 것은 전체 맥락으로 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군인 출신인 그가 좀 더 세련된 외교적 화법으로 우리 감정을 덜 자극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정간섭’ ‘조선총독’ 운운하며 해리스 대사를 몰아세우는 건 동맹국 외교사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부와 여권은 북한 개별관광 허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치졸한 해리스 대사 때리기는 당장 관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