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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라임운용, 금감원에 '상각 때 문제점' 문건 보냈다

중앙일보

입력

금감원의 라임펀드 상각 요구는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라임운용은 상각 요구에 시달리다 못해 심지어는 최근 '밸류에이션(Valuationㆍ가치평가) 결과 기준가 반영 때 이슈 검토'라는 제목의 입장 문건을 만들어 금감원에 보내기도 했다. 밸류에이션 결과를 기준가에 반영한다는 것은 곧 상각을 의미한다.

상각, TRS만 생각해도 쉬운 문제 아니다

상각은 금감원의 기대처럼 단순한 손실처리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배경엔 라임운용과 판매사들이 풀지 못한 총수익스와프(TRS) 딜레마가 있다. TRS는 증권사가 일정 수수료를 받고 주식, 채권, 전환사채 등의 자산을 운용사 대신 매입해주는 계약이다. 만약 자산운용사가 증권사와 담보비율이 50%인 TRS 계약을 맺었다면, 10억원어치 전환사채를 매입하면서 자기 돈은 5억원만 투자할 수 있다. 10억원에 대해 발생하는 수익은 운용사가 가져가지만, 펀드 명의자는 TRS 증권사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손실이 발생했을 때다. 증권사 입장에선 담보가치가 하락할 경우 운용사에 담보비율을 상향 조정할 것을 요청한다. 더 많은 증거금을 납입하란 얘기다. 운용사가 증거금 추가 납입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연배상금을 매겨 이자 형태로 현금을 받아간다. 실제로 라임운용은 지금 이 문제에 직면해있다. KB증권은 지난해 9월 초 라임펀드에 적용했던 50% 수준의 TRS 계약 담보비율을 7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라임펀드의 비용 증가로 이어져 끝내는 가입자들의 수익률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은 그나마 낫다. 상각이 현실화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TRS를 제공한 증권사들 입장에선 더이상 증거금 납입 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된다. TRS 증권사들은 담보물로 잡은 라임펀드 자산에 대한 반대 매매를 한다. 판매사들로선 건질 수 있는 수익이 사라지게 되고 이는 펀드 가입자의 손실로 직결된다.

라임운용은 금감원에 보낸 문건에서 "테티스 2호 및 플루토 FI D-1호 펀드는 많은 부분을 TRS 레버리지를 활용해 TRS 증권사 명의로 기초자산에 투자했다"며 "기초자산 실사 밸류에이션 결과를 즉시 기준가격에 반영하게 되면 거래담보비율이 100%가 아닌 경우 기초자산의 평가손실이 발생해 TRS 조건에 따라 추가담보금액이 필요하게 될 수 있고, 이를 납입하지 못하는 경우 TRS가 기한 전 조기 종료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건은 또 "TRS의 기한 전 조기종료 때 증권사의 기초자산 반대매매 등으로 인해 손실이 확정되며, 이 경우 향후 기초자산으로부터 회수 가능한 기회가 완전히 소멸해 펀드 투자자들에게 수인 불가능한 손실이 전가될 수 있다"며 "TRS 증권사가 TRS를 조기 종결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스왑거래기본계약서에 따라 미지급담보금액에 고율의 지연이자 등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펀드 수익자 손실로 귀결된다"고 썼다.

라임자산운용이 최근 금감원에 제출한 'valuation기준가반영시TRS등이슈정리' 문건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이 최근 금감원에 제출한 'valuation기준가반영시TRS등이슈정리' 문건 [라임자산운용]

라임운용은 그밖에도 금감원에 보낸 문건에 특정 자산을 상각할 경우 그 밸류에이션 기준이 회사의 집합투자재산평가규정에 위반되며, 이때 타 운용사와의 기준가격과도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데 대한 우려를 담았다. 또 해당 자산(투자 기업) 채무자들이 라임의 자발적 상각 의도를 추측하고 채무 변제를 회피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상각의 '낙인효과' 어쩌나

상각은 '낙인효과'로 인해 라임 펀드 투자 기업의 회수율을 더 떨어뜨릴 여지도 만든다. 라임운용 관계자는 "펀드가 A라는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회사의 자금 상태가 썩 좋지 않다면, 운용사는 회사를 찾아가 상환 방법을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리파이낸싱(재대출) 또는 추가적인 자금조달을 통한 회수 계획을 세우도록 도울 수도 있다"며 "그런데 A회사에 대한 상각이 한번 결정난다면 그 뒤로 어느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산이 이 회사에 돈을 대려고 하겠나, 그 결정으로 A는 '망가진 회사'란 낙인이 찍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각 대상 투자 기업이 상장사라면, 이는 상장폐지로 이어져 또 다른 투자자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 라임 관계자는 "상장사의 겨우 상각 대상이 되면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뿐 아니라 회계감사 때 감사인으로부터 정상적인 감사의견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채권 회수는 그 어느 때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상각이)수학의 공식처럼 정확한 밸류에이션을 정한 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단순히 숫자의 논리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기에 답답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시달리느라 회사는 개점휴업

채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했던 지난 몇 개월, 라임자산운용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여러 반박 논리에 따라 문제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금감원 자체가 우리를 아무 일도 못 하게 만들고 있다"며 "원종준 대표가 한번 금감원에 가면 몇 시간씩 잡혀있다가 저녁 늦게 겨우 회사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관계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라임운용 관계자는 "잘못이 크고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하며, 금감원이 꼭 해야 할 일인 것도 맞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수익률이 더 훼손되지 않게끔 투자사의 상환을 위해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니냐, 이러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닌지 그게 제일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라임, 끝내 "실사내용 기준가격에 반영"

라임자산운용이 최근 금감원에 제출한 'valuation기준가반영시TRS등이슈정리' 문건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이 최근 금감원에 제출한 'valuation기준가반영시TRS등이슈정리' 문건 [라임자산운용]

라임운용도 끝내 자산을 상각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라임자산운용은 15일 오후 9시쯤 보도자료를 배포해 실사보고서 내용을 펀드 자산 기준가격에 반영(상각)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음을 알렸다.

라임운용은 보도자료에서 "당사는 3개 모펀드 및 157개 자펀드의 기준가격을 집합투자재산평가규정에 따른 평가기준으로 평가해왔다"며 "그러나 현재 상황의 심각성 및 투자 자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번 실사보고서의 내용을 기준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는 실사 결과 이후 3일 이내에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개최하고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상황을 감안해 자산별 평가가격을 조정한 후 기준가격에 반영(상각을 의미)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기준가 반영이 최종 손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평가 이후 자산별 실제 회수상황 등에 따라 기준가격이 변동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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