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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도시락 날라야 봉사일까? 법,질서 지키는 일도 봉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40)

새벽녘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자동차. 고양이 심리와도 같다. 보지 않으니,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사진 한익종]

새벽녘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하는 자동차. 고양이 심리와도 같다. 보지 않으니,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사진 한익종]

아내가 요양보호사를 새 직업으로 택했다. 평생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60넘어 새 직업을 선택한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고, 나이 들어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한 미안한(?) 생각 등 복잡한 마음을 담아 어둑한 새벽, 요양원까지 차편을 제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대기중인 내 앞으로 신호를 무시한 차량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둑한 새벽길, 차량통행도 거의 없으니 큰 일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신호를 위반한 것일 게다. 비단 이번의 경우만은 아니다. 지방도로를 운행하다 보면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등 교통법규 위반이 다반사다. 모두 단속에 안 걸리면 그만이고, 이제껏 사고가 없었으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낳은 행동들이다.

또 고양이심리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생각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고 여기고 차가 달려와도 피할 생각 없이 그냥 가로지르는 고양이가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한다. 또 사소한 빌미가 큰 사고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고양이심리에 빠지고,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무시하는 행위는 큰 사고를 야기하게 되니 실로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읽은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20~30대보다 50대 이상이 음주단속에 더 많이 걸리며 그 이유가 인터넷 환경에 강한 젊은층은 음주단속 앱을 이용한다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IT환경에 덜 익숙한 50대 이상이 음주앱을 사용할 줄 몰라 음주 후 단속에 많이 걸린다나? 그래서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들도 음주단속앱을 이용한다고 하니 이걸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고양이심리의 위험성과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적용해 본다면 음주앱을 이용해 음주단속을 피해가는 젊은층에게는 울음을, 그를 몰라 단속에 걸리는 50대 이상에게는 웃음을 보낸다. 무슨 해괴한 논리냐고? 차라리 단속에 걸리는 게 자신의 생명은 물론 타인의 피해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 범죄심리학 이론으로, 작은 무질서 상태가 더 크고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사진 Pixabay]

깨진 유리창 법칙. 범죄심리학 이론으로, 작은 무질서 상태가 더 크고 심각한 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사진 Pixabay]

우리는 장애를 생각할 때 단순히 선천적 장애만을 생각하는 데 장애인에 대한 봉사의 경험에 의하면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입은 경우가 더 많았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258만여 명 중(등록 안한 장애는 얼마나 많을까?) 후천적 요인에 의한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의 88%에 달하고 그 중 약 32%가 사고로 인한 장애라고 한다.

사고로 인한 장애의 대부분이 나는 아닌, 남의 경우라고 생각했던 부주의와 방심에서라고 하니 법과 질서, 기준을 지키는 일이 결국 나를 위하는 일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법과 질서의 준수는 타인에게 끼치는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일일수도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에 대한 기여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다. 선진국의 지표는 여럿이 있는데, 제도나 시스템을 잘 준수하는 것도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판가름하는 지표다. 선진국일수록 만들어진 제도를 잘 따름으로써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게 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유이다.

결국 선진사회는 그 구성원이 법과 질서를 잘 지킴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는 의식이 확립된 사회이다. 아주 오래 전 미국민들의 준법정신과 교통질서준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를 찾아 밤10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미속촬영(시간대별로 사진을 찍어 연결하는 기법)을 해 본적이 있었다. 그 6시간 동안 신호위반을 하는 차량이 단 한대도 없었다. 그때의 놀라움과 시민의식에 대한 존경심이란.

새벽시간대, 아무도 보지 않아도 교통신호를 철저히 지키는 것은 결국 큰 사고를 막는 길임을 모두가 인식하고 지키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은 오래 전 세계범죄 1위 도시의 불명예를 안고 있던 뉴욕시가 줄리아니 전시장이 취임한 이후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적용해 기초질서위반에 강력히 대처함으로써 강력범죄 발생률을 대폭 줄인 사례를 잘 알고 있다.

직접적인 봉사와 기부를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보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규범과 법을 지킴으로써 발생가능한 사회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앙포토]

직접적인 봉사와 기부를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보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규범과 법을 지킴으로써 발생가능한 사회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앙포토]

우리는 봉사를 직접적인 봉사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봉사는 성과가 바로 나타나 매우 효율적인 봉사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과 비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꺼려 한다. 그런데 봉사에는 간접적인 봉사도 있다. 간접봉사는 즉각적인 효과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는 봉사이다. 그리고 오래 축적되면 커다란 효과를 볼 수 있는 봉사가 간접봉사이다. 사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일도 간접봉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봉사 참 쉽죠 잉~~.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봉사와 기부를 통해 즉각적인 효과를 보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규범과 법을 지킴으로써 발생가능한 사회적 피해를 예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봉사의 개념을 확장시켜 볼때 봉사가 일부의 사람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가치를 공유하게 되면 봉사나 기부가 생각보다 쉽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고 직접적인 봉사에도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다. 나는 이를 봉사의 확장성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넘어짐을 반복함으로써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는 논리인, 잦은 경험의 축적이 큰 행동을 자신있게 하는 것과 같다.

세계적 초일류기업의 미국 본사 연수원 벽에 쓰어져 있던 표어가 기억난다. “네가 만일 단 한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면, 너는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멋진 슬로건이다. 패러디를 해 보면 “네가 만일 단 한번도 봉사나 기부를 하지 않았다면 너는 단 한 번도 함께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떤가? 새해부터는 봉사나 기부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고귀한 행동이 아니라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법규와 질서를 준수하는 것으로부터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보자.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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