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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은 가능한 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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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차이잉원 재선 이후 대만의 향방

11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가운데)이 역대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차이가 답례하고 있다. [타이베이 AP=연합뉴스]

11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가운데)이 역대 최다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차이가 답례하고 있다. [타이베이 AP=연합뉴스]

“민주 대만은 중국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역대 최다 득표로 대만 총통에 재선된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 소감이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권·영토를 굳건히 수호하고 일체의 대만독립 행위를 불허한다”는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중국은 차이잉원, 민진당이란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양안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잘 보여준다.

“대만이 엄연한 독립국임을 전제로 한 차이의 주권 수호 주장은 과열된 #선거 과정의 정치적 소신 표명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홍콩 사태를 #겪으면서 차이의 주장이 과감해졌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하나의 중국과 대만의 주권이 양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대선은 외부 변수가 미리 승패를 결정한 특이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혜성처럼 나타나 한 때 차이잉원을 위협했던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도 홍콩 시위 덕에 천군만마를 얻은 차이를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홍콩의 오늘에서 대만의 내일을 예감한 대만 유권자들의 반중국 정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유권자의 30%가 넘는 20~30대 청년들의 표심이 차이잉원에게 쏠리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전례 없는 압승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과 민진당이 승리의 기쁨을 누릴 시간은 그리 길 것 같지 않다. 아마 차이 총통은 당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산적한 난제들을 타개할 궁리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차이는 전형적인 독립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일국양제와 자유 대만의 주권 수호 중에서 양자택일하라는 차이의 거침없는 주장은 홍콩 시위로 촉발된 대만의 반중국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문제는 대만의 정체성과 양안관계에 대한 차이의 주장이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가 늘 남북관계에서 발목 잡히듯 대만의 최고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양안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속 시원하게 말할 수는 있으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재선의 차이잉원은 과연 예외일 수 있을까.

차이 총통은 양안의 기본 합의인 ‘92 컨센서스’를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대선 기간 내내 일국양제 수용 불가와 대만 주권 수호를 외쳤다. 1월 1일의 신년사에서는 일국양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으며, 대만은 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 차례의 TV 대선 토론에서도 대만의 주권 수호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대만의 주권 수호라는 말에는 이미 ‘하나의 중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담겨있다. 예전 같으면 독립 추진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차이의 과격한 주장을 외면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홍콩 사태의 교육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1971년 유엔이 결의한 ‘지구상의 중국은 오직 하나이고 대만은 불가분한 그 일부분’이란 철칙을 인정하지 않으면 양안의 평화와 교류협력은 유지되기 어렵다. 더욱이 중국은 차이 민진당 정부가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를 ‘공식적’으로 부정한다면 이를 독립선언으로 인식할 것이다.

결국 대만이 엄연한 독립국임을 전제로 한 차이의 주권 수호 주장은 과열된 선거 과정의 정치적 소신 표명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홍콩 사태를 겪으면서 차이의 주장이 과감해졌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특히 중국은 대만의 주권 수호란 표현 자체를 최상위 핵심 이익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것이다. 또한 이를 시진핑의 정치적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중국과 대만의 주권이 양립하기 어려운 이유다.

양안의 상생·공영은 지속 가능한가?

1987년 당시 장징궈(蔣經國) 국민당 정부가 대륙의 친척방문을 허용한 이래 양안의 비약적인 교류협력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두 체제가 어디까지 상생·공영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특히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양안 경협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집권기 양안의 교류협력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당 한궈위 후보는 양안 교류협력 확대를 통한 ‘대만의 안보 강화와 경제성장’(臺灣安全 國民有錢) 구호를 내세우며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안보와 경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사실 이는 그동안 대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중국과 대립해선 안보와 경제 모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국민당이 대패한 것은 우선 홍콩 사태의 영향이 너무 커서 장기적인 유불리를 떠나 눈앞의 반중 정서에 표심이 흔들렸고, 또한 마잉주 집권기 양안 경협의 혜택이 특정 기업과 정치세력에 편중되었다는 불만 때문이다.

2016년 차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안 경협의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선에서 기존 교류협력을 유지했듯이, 앞으로도 규제를 강화하고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하향 조정하는 선에서 양안 교류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당선 소감에서도 차이는 ‘평화·평등·민주·대화’에 입각한 양안관계 발전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중국의 각종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진당 주도하에 통과시킨 ‘반(反)침투법’이 양안교류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 이 법은 ‘외부 적대세력의 침투·개입으로부터 주권·안보 및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수호’라는 취지에서 제정되었지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양안 교류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을 우려해 국민당은 ‘200만에 달하는 재중 대만기업인(臺商)들의 목에 폭탄을 채우는 행위’라고 반발하며 위헌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민진당은 반침투법이 언론자유나 민간교류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지만 적대 세력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선거운동 지원 및 가짜 뉴스 유포, 공무원 로비 등에 대한 무거운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서 단기적으로 양안교류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양안교류가 이미 민진당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남아, 대양주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남향정책’(南向政策)이 양안경협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만의 국제적 생존공간은 확장 가능한가

대만이 직면한 심각한 위기의 하나는 국제사회의 생존공간이 나날이 축소되는 현실이다. 차이잉원 집권기에만 6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 중국이 강성하고 국제사회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는 한 막을 방법이 없다. 대만의 주권 수호를 외치는 차이잉원도 외교 현장에선 할 말을 잃는다. 더욱이 중국은 대선 이후 차이잉원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하여 얼마 남지 않은 외교 공간마저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무력 사용 없이 대만을 고립무원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만이 기댈 곳은 오직 미국뿐이지만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버리고 냉전기의 중국 봉쇄정책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제한적이다.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차이에게 보낸 당선 축하 덕담으로는 이를 바꿀 수 없다. 미 의회에 친대만 인사들이 많다고는 하나 이들의 발언은 방문지와 청중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따라서 재선의 차이 총통이 외교 무대의 확장을 위해 애쓰겠지만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다.

이처럼 집권 2기의 차이잉원 정부가 해결해야 할 국정 현안이 쌓여있으나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선거에서는 일국양제, 주권 수호 등 대만의 정체성과 관련된 감성적 현안이 주된 쟁점이었지만 유권자들이 이제는 경제, 노동, 교육, 사회복지, 탈원전 등의 현실문제에 눈을 돌릴 것이다. 이들에 대한 1기 차이 정부의 성과는 매우 부진했고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역설적으로 차이잉원 총통은 반중국 정서로 달아오른 선거유세장에서 대륙을 향한 한을 토해내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짜릿했던 대선 지지율 ‘57.13%’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을 의미하는 ‘일중일대’의 꿈도 아직은 요원하다.

키워드

92컨센서스(92共識)
중국과 대만의 반(半)관영기구가 1992년 싱가포르에서 만나 구두로 합의한 공통인식을 일컫는다.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내용이다. 대만의 국민당은 이를 인정하지만 민진당은 이 합의의 효력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중일대(一中一臺)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이란 뜻. 양안(兩岸)의 한쪽에 각기 하나씩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뜻의 일변일국(一邊一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대한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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