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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청사에 공자 입상이 새겨진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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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공자철학은 서양 근대화의 DNA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동쪽 입구의 지붕 바로 아래에 세워진 인물 조각들. 구약성서의 영웅 모세의 좌상이 한가운데 있고 모세의 오른편에 중국 전통복장 차림의 공자 입상이 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이 공자철학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동쪽 입구의 지붕 바로 아래에 세워진 인물 조각들. 구약성서의 영웅 모세의 좌상이 한가운데 있고 모세의 오른편에 중국 전통복장 차림의 공자 입상이 있다. 미국의 건국 정신이 공자철학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법무부는 1930년대 초에 신축한 연방대법원의 동편 입구에 모세 좌상을 중심으로 모세의 왼쪽에 솔론 입상, 오른쪽에 공자의 입상을 세웠다. 이 3인조 석상들은 오늘날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개신교가 중시하는 예수를 빼고 이 3인조 석상을 세운 조각가 허먼 맥닐은 “동방으로부터 유래한 기본법과 준칙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교적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1930년대까지도 이렇게 기억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유교문명과 공자철학은 16∼18세기 서천(西遷)하여 서양의 계몽주의를 일으키고 기독교문명을 세속화·근대화시켰다. 유교와 공자철학이 서구근대의 유전자(DNA)였다는 사실은 공자와 가장 무관할 것처럼 보이는 서양 최초의 근대국가 미국의 건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입증된다. 미국의 국부(國父)들은 모두 다 공자숭배자들이었다.

“유교화된 극동·극서 지역만이 ‘높은 근대’에 도달한 #반면, 유교를 모르는 기타 아시아·기타 유럽·남미· #아프리카 제국은 ‘전근대’나 ‘비 근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개신교를 믿는 나라만이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막스 베버의 테제를 정면 부정한다”

한국과 중국·일본의 지식인들은 19세기말 이래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감과 유교문화에 대한 자학 의식에 시달려 왔다. 그리하여 지난 세기까지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극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보통 서구문물 중에는 ‘나쁜 요소들’도 많지만 ‘좋은 요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밀 분석해보면, 동서양 학자들이 그간 ‘서양 고유의 요소’로 오해해 온 ‘좋은 요소들’은 모두 16세기 중반부터 250년간 유교문명권에서 건너간 것들이고, 제국주의·군국주의·파시즘·집단학살 등 ‘나쁜 요소들’은 모두 다 서양의 호전적 히브리이즘과 헬레니즘 전통에서 유래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유교문명의 서천(西遷)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너나없이 공자를 숭배하며 기독교적 계시도덕과 봉건적 신분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자의 세속적 도덕철학과 중국적 평등모델을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극서(極西)제국에서 일어난 계몽주의란, 공자철학을 ‘리메이크’함으로써  기독교적 몽매와 미신을 타파해 세계를 탈(脫)주술화(disenchant)·세속화(secularize)하고 봉건적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는 인간해방 기획이었다. 계몽운동에 의해 확립된 수많은 근대적 아이콘들은 거의 다 공자철학과 중국의 ‘낮은 근대(초기근대)’의 문물을 유럽적 견지에서 리메이크해 ‘높은 근대(고도근대)’의 문물로 발전시킨 것들이었다.

십수년간 유럽의 사료들을 추적한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서양에서 16세기말에 등장한 인간과 백성의 ‘자유’ 이념은 공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와 ‘백성이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한다(百姓則君以自治)’는 명제로부터 나왔다. 근대적 ‘평등’은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다(天下無生而貴者也)’는 공자의 태생적 평등론과 관직불세습론(士無世官), 중국의 능력주의 공무담임제와 탈(脫)신분적 평등사회 모델로부터 유래했다. 관용·인권사상·자유시장·공무원 임용고시·관료제·내각제·권력분립제·폭군방벌(혁명) 및 세속적 정치문화·정교(政敎)분리·보통교육·3단계 학교제도·복지국가 등 기타 수많은 근대적 아이콘들도 공자 경전과 중국 제도로부터 유래했다.

이 때문에 한·중·일 극동 3국은 19세기말 극서에서 건너온 ‘양물(洋物)’을 처음 접했을 때 잠시 당황했을지라도 곧 이를 유교문화와 동질적인 것으로 느꼈다. 이것은 서양 각국의 제도가 보다 세련되긴 하지만 우리 제도와 상당히 합치된다는 기본인식에서 출발해, 전통을 바탕으로 새것을 참작해 한국화함으로써 근대화를 이룩한다는 대한제국의 구본신참론(舊本新參論)에서도 명확하게 정식화되었다. 이미 ‘낮은 근대’에 도달해 있었던 극동제국은 전통을 세련하고 양물들을 참작해 한국화·중국화·일본화함으로써 단기간에 ‘높은 근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일본은 개항 90년 만에 영국·프랑스·독일을 능가했고, 한국은 개항 100년 만에 11개 극서제국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중국은 아편전쟁 후 80년 만에 세계4대 경제대국으로 복귀했고 2010년에는 제조업 생산에서 미국을 앞질렀다.

미국의 진짜 건국정신

공자

공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세계에서 유교화된 극동·극서 지역만이 ‘높은 근대’에 도달한 반면, 유교를 모르는 기타 아시아·기타 유럽·남미·아프리카 제국은 모두 다 ‘전근대’나 ‘비(非)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계적 분단에 주목하면 ‘근대화’의 DNA가 공자철학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개신교를 믿는 나라만이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막스 베버의 테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유교문화가 근대화의 DNA였다’는 사실은 미국의 건국에서 입증된다. 미국의 국부들은 모두 공자의 숭배자들이었다. 반(反)청교도적 무신론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공자경전 영역본을 읽고 자기가 소유한 신문 펜실베니아 가제트에 연재했다. 유교적 수신을 통해 스스로 유자(儒者)로 자부하고 공자의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정직은 최선의 정치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로 영역했다.

토마스 제퍼슨도 유교적 평등·자유·관용 이념의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무신론자였다. 중국의 탈(脫)신분적 평등사회를 동경했던 제퍼슨은 자신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성서의 불평등창조론에 맞서 만인평등창조론을 천명했다. 그는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정치의 온갖 기술은 정직의 기술이다(The whole art of government consists in the art of being honest)’고 영역해 좌우명으로 삼았다. 또 그는 대통령취임 연설에서 ‘유교’를 유순한 종교라는 뜻의 ‘a benign religion’이라고 슬쩍 개칭하고 이것을 미국의 도덕적 기준으로 제시했다.

공자로 시작해 공자로 끝나는

미국의 건국정신을 풍요롭게 만든 랠프 에머슨과 데이비드 소로도 공자를 숭배한 유자들이었다. 에머슨은 오늘날 ‘미국의 공자’라 불린다. 소로의 가장 유명한 책 『시민불복종론(Civil Disobedience)』은 철두철미 유교적이다. ‘전혀 다스리지 않는 정부가 최선이다(That government is best which governs not at all)’로 번역한 공자의 ‘무위이치’로 시작되는 이 책은 ‘나라에 도가 있는데 빈천한 것도 치욕이고 도가 없는데 부귀한 것도 치욕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는 공자의 명제를 논하고, ‘중국철학자는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간주할 만큼 충분히 지혜로웠다’는 말로 끝난다. 소로는 ‘천하에 도가 없으면 은둔한다’는  ‘무도은둔(無道隱遁)’을 ‘시민불복종’개념으로 풀이했다.

한 마디로 미국은 ‘유교적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했고, 미국의 건국정신은 기실 반(反)청교도적 공자정신이었던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새겨진 공자 석상의 뜻만 제대로 알려져도 미·중 갈등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일시적 낙후성을 유교 탓으로 돌린 베버의 이론과는 정반대로 유교는 실은 극동·극서의 근대화 동력이었다. 중세의 어둠 속에 깊이 잠들었던 서구문명을 깨워 근대화시킨 것도 유교였고, 한·중·일 3국의 신속한 고도근대화를 고취하고 가능케 한 결정적 동력도 유교였다. 공자는 동서의 온 백성을 해방하고 세계를 사해형제적 인도주의와 평화로 일깨운 성인이었다. 이런 뜻에서 공자는 극동 3국의 문화적 긍지이자 역내평화와 공존공영을 위한 공동자산이다. 한·중·일은 공자를 버리고 서양의 ‘나쁜 요소들’을 추종하던 시기에 유혈갈등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공자와 유교적 생활문화를 길이 지킨다면 한·중·일 3국은 영구평화 속에서 공동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무위이치(無爲而治)
하는 것(作爲)이 없어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진다는 뜻으로 정치의 최고 경지를 표현하는 말로 인용된다. 논어 위령공편의 ‘하는 것이 없어도 잘 다스리는 이는 순 임금인가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에서 유래했으며 노자의 도덕경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낮은 근대/ 높은 근대
일본 역사가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에 따르면 송(宋)대 중국은 사상초유로 ‘초기근대(early modernity)’ 또는 ‘낮은 근대(低近代)’를 이룩했고, 10세기 이후 세계사는 중국의 ‘초기근대’ 문물이 동서로 확산되는 과정이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19세기 한·중·일 3국의 근대화 과제는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도약’이 아니라 ‘낮은 근대에서 높은 근대로의 도약’이었다. 하는 것(作爲)이 없이도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다.

◆황태연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분석한 『지배와 노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공자철학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 유교가 서양정치사상에 미친 영향을 천착한 결과물로 『공자와 세계』등 10여 권의 관련 저서를 펴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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