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미 삐걱이면 등장한 '친서 외교'···北 반응 이번엔 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6월 23일 보도했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를 읽고 있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6월 23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미 간 관계가 삐걱일 때마다 등장했던 양 정상의 ‘친서’가 새해 들어 처음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일(1월 8일)을 축하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북한이 11일 담화를 내면서다.

북한 새해 첫 담화가 알려준 세 가지

북한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미국에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는 현 대치 국면을 풀어 보려는 제스처로 해석됐다. 하지만 북한은 곧바로 김계관 외무성 고문 명의의 담화를 내 대화 복귀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트럼프 친서 이번엔 안 통하나

북·미 간 ‘친서 외교’는 지난 2년 간 비핵화 협상 위기 국면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한 게 대표적 사례. 북·미가 첫 정상회담 개최를 앞서 4월 공식화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거친 담화를 문제 삼으며 한 달 만에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그러자 당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개최를 다시 확인하며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2018년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도 북·미 정상이 2019년 1월 친서를 주고 받은 뒤 2월 말 하노이 2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회동 전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생일(6월 14일) 즈음해 친서를 보내며 정상 간 신뢰를 확인했다.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댄 스캐비노 트위터 캡처]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댄 스캐비노 트위터 캡처]

비핵화 협상 주요 국면엔 친서가 빠짐없이 등장했고, 대화로 이어지는 돌파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 김계관 고문은 11일 담화에서 “(양 정상의)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진다거나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며 “김 위원장은 사적인 감정으로 국사를 논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도 당장 국면을 바꾸기보다 상황 관리 차원의 목적이 컸을 것”이라며 “친서 외교도 ‘톱 다운’ 방식이 통할 땐 효과를 발휘하지만, 내부 관료의 목소리가 커지면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재-핵 교환 안 해”

김 고문은 그러면서 미국에 대화 재개를 위한 요구사항을 재확인했다. “일부 유엔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시설을 통채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윁남(베트남) 같은 협상은 다시 없을 것”이라며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면서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요구사항’에 대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 ▶한국의 전략무기 반입 중단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2019년 10월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미국 측과 회담 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2019년 10월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미국 측과 회담 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은 하노이 회담까지 비핵화·상응조치를 동시에 병행하자고 했다가 결렬되자, 미국에 체제 보장까지 아우르는 상응조치를 요구하며 허들을 높였다”고 말했다. 즉 자신들이 취한 비핵화 조치(핵시험·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 에 미국이 선제적으로 답해야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의미다.

조 위원은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라는 주장 하에 한·미 연합훈련,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 추가 제재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며 “지난해 말 전원회의, 이번 담화도 이런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통미봉남(通美封南) 재확인?

북한은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찬 물을 끼얹었다. 청와대가 10일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담화를 내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며 한국에 “자중하라”고 쏘아붙였다.

새해 들어 북한의 대남 메시지가 없었던 면에서 이날 담화가 문 대통령의 7일 신년사에 대한 공식 반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남북 간 독자적으로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대북 정책 구상을 밝힌 데 대해 북·미에 앞서 남북관계를 앞세울 일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는 얘기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학과 교수는 “대남관계 단절 기조를 드러냈다”고 풀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고유환 교수는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대남 메시지가 없었던 게 오히려 한국과의 대화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했다. 고 교수는 “미국이 대선 등 정치적 여건 상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못할 걸로 인식하면서 한국과는 상황을 열어둘 수 있다”며 “자중하라는 말도 기다려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