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서비스는 기존에 없었다. ‘트래블월렛’은 온라인 환전 서비스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은행 계좌를 연결하고 환전을 요청하면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외화를 ‘현지에서’ 실물로 받는다. 정신없는 공항에서 목돈을 들고 다니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단 뜻이다. 여행 중 현금이 부족할까봐 한 번에 많은 액수를 환전할 필요도 없다. 돈이 떨어지면 그때그때 현지에서 앱으로 환전을 신청하고 가까운 현지 은행에 가면 된다. 환전 우대율은 100%인데, 이는 환전 수수료가 ‘제로’라는 뜻이다.
온라인 환전 서비스 ‘트래블월렛’ #국제금융센터 다니던 유학파의 도전 #동남아 7개국·달러·유로·엔화 취급 #런칭 10개월, 누적 환전액 150억
수수료 제로인 환전 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지난해 3월 트래블월렛을 창업한 김형우 대표(35)와 7일 만나 물었다.
- 수수료 ‘0원’이 가능한가.
- 시중은행의 환전 수수료가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실물 지폐를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일반 화물과 달리 운송 시 경호 인력이 붙는다. 당연히 유통비가 비싸다.
- 동남아 환전은 특히 비싼데.
- 수요가 낮아서 그렇다. 달러처럼 수요가 많고 회전율이 빠른 화폐는 보관료가 싸다. 반대로 동남아 화폐처럼 수요가 들쑥날쑥하고 수요가 적은 화폐는 보관료가 비싸다. 미국 달러 수수료가 1~2%라면 베트남 동은 10%가 넘는다. 실물 화폐를 현지에서 받으면 이런 낭비가 없다.
김 대표는 이 대목을 설명하며 “현지에서 현지 화폐를 수령하는 환전 서비스는 트래블월렛이 세계 최초”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얼마나 싼가.
- 한국 돈 100만원을 베트남 화폐 ‘동’으로 바꾼다고 볼 때 트래블월렛을 이용하면 2000만 동을 주지만 공항 환전소를 이용하면 1760만 동을 준다. 시중 은행은 1860만 동 정도다. 대략 7~12만원을 아낄 수 있다.
- 수수료를 안 받으면 어떻게 수익을 내나.
- 환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 상품과 여행자 보험 판매를 중개한다. 공항 라운지 이용권도 판다. 지금은 이런 부가 상품으로 수익을 낸다. 장기적으로는 외환전문은행이 되는 것이 목표다. 덩치를 키워서 개인 간 거래뿐 아니라 기업의 외환 거래까지 담당하는 거다.
- 어떤 원리로 환전이 되나.
- 해외 송금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한국의 내가 방콕에 있는 나에게 송금을 하는 거다. 일반적으론 송금받은 돈을 찾기 위해선 은행 계좌가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동남아엔 현지 계좌가 없어도 신분증이나 QR코드로 돈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보통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국에 돈을 보낼 때 쓰는 시스템인데 이걸 일반 여행객들도 쓸 수 있게 확장한 것이다. 동남아뿐 아니라 호주와 일본에서도 현지 수령이 된다.
-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 펀드매니저, 외환 연구원으로 8년을 일하며 직업병이 생겼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결제 건 별 수수료가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거다. 순간적으로 ‘방금 수수료 3780원을 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했다. 언제부턴가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잘나가는 직장 때려치우고 스타트업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 런던에서 금융학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서 좋은 조건으로 취직했다. 그렇게 직장 생활 8년을 했는데 일이 익숙해진 뒤에는 애초에 왜 금융 공부를 시작했는지를 돌아보게 되더라. 사회 초년생일 때 키코 사태가 터졌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자고 유학까지 가서 외환 수수료를 낮추는 방법을 공부했는데 큰 회사에선 이걸 마음대로 실험할 수 없지 않나. 딱 3년만 올인하고 3년 안에 서비스 런칭에 실패하면 관둬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다.
그는 국제금융센터라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김 대표는 “부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사직서를 냈는데 막상 퇴사일이 다가오자 2주 전부터 잠이 안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영락없는 35세 청년의 모습이었다.
- 환전 관련 에피소드도 있나.
- 창업 전 급히 출장을 가느라 미리 환전을 못 한 적 있었다. 수중에 신용카드만 있어서 현지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뽑으려는데 신용 출금을 했더니 기계 수수료만 8000원이 나갔다. 더 황당했던 건 한국에 돌아와 보니 신용등급이 1등급에서 4등급으로 내려갔더라. 환전 미리 못한 죄로 해외에서 ‘카드론’을 쓴 사람이 된 거다.
- 고객 후기 중에 돈 찾으려고 현지 은행에 갔는데 어려움이 있었단 얘기도 있다.
- 서비스 초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은행 직원에게 ‘익스프레스 캐시 픽업’이라고 말을 해도 우리 은행엔 그런 게 없다고 응대하는 식이다. 직원 전원이 출장을 가서 현지 파트너 은행을 돌았다. 이렇게 방문한 은행이 베트남에만 500곳이 넘는다. 서비스가 잘 되는지 확인하고 안 되는 곳은 일일이 교육 전단지를 돌렸다.
- 인프라 문제도 있지 않나.
-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구글맵에 파트너 은행 주소를 찍고 갔는데 그 자리에 은행이 없는 식이다. 돈을 찾으러 갔는데 은행이 없으면 고객은 ‘멘붕’일 수밖에 없지 않나. 재래식으로 하나하나 방문해 위치를 확인하고 주소를 정정했다. 지금은 이런 컴플레인이 많이 줄었다.
- 사업 확장 계획은.
- 단기적으로는 해외 ATM을 이용한 환전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오프라인 은행은 영업시간 내에만 돈을 찾을 수 있는 불편함이 있지 않나. 여행객들이 365일 24시간 싸게 환전을 할 수 있도록 ATM사로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것이 단기 목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