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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벌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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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영화 ‘벌새’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지난해 한국영화의 중요한 수확이다. 이 영화에 주목하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미지’다. 첫 장편임에도 감독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능숙하게 결합시킨다. 그 솜씨는 꽤 노련하다. 특히 무너진 성수대교의 비주얼은 개인적으로 지난 1년 동안 한국영화가 보여준 가장 울림 있는 장면이었다. 혹독한 성장기를 겪고 있는 은희(박지후)의 상실감을 이토록 적절하면서도 대담하게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평범한 중학생 소녀의 성장기처럼 보이지만 ‘벌새’는 ‘동정 없는 세상’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다. 이제 14살이 된 은희에게 세상은 그 질서를 받아들이며 순응할 수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는 대상이다. 이때 만난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는 은희에게 처음으로 “세상에 맞서 싸우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성수대교 참사로 세상을 떠난다. 은희는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하기로 결심하고, ‘날라리’ 언니와 그의 남자친구가 동행한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목격하는 거의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광경. 믿을 수 없는 폐허가 주는 압도적인 공포. 하나의 시대를 하나의 공간으로 집약하는 힘.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그 시간을 겪었던 관객들에겐 강력한 트라우마의 소환이며, 앞으로 은희가 겪을 현실 역시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세상일 거라는 예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아이들은 버티기 위해 벌새처럼 숱한 날갯짓을 해야 할 것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