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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프레온가스' 배출 잡아내고 PTSD 치료법 규명…올해의 기초연구자 10인

중앙일보

입력

올 한 해 한국의 과학ㆍ기술 기초 연구는 어떤 업적을 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우수 기초연구 성과를 이룬 2019년 ‘올해의 기초연구자’를 발표했다. 자연과학ㆍ생명과학ㆍ의약학ㆍ공학ㆍICT 융합 분야를 통틀어 총 10명이 선정됐다.

1. 중국서 배출된 ‘사용금지’ 프레온가스 잡아내

그림 a와 b는 각각 2008-2012년과 2014-2017년 기간 평균 배출량의 지역 분포를 나타낸다. 그림 c는 두 기간사이의 배출량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 경북대]

그림 a와 b는 각각 2008-2012년과 2014-2017년 기간 평균 배출량의 지역 분포를 나타낸다. 그림 c는 두 기간사이의 배출량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 경북대]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사용 금지된 오존층 파괴 물질 프레온가스(CFC-11)가 중국에서 지난 수년간 다량 배출된 것을 확인한 박선영 경북대 교수가 선정됐다.

CFC-11은 유해 자외선을 차단해 지구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성층권 오존층을 파괴한다. 유엔 역사상 전 세계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의정서인 ‘몬트리올 의정서’(1987)는 프레온가스 생산과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있다. 국제 협약을 위반한 중국은 결국 박선영 교수 연구팀에 덜미를 잡혔다.

박선영 교수팀은 동북아 대표적 온실기체 관측지인 제주도 고산 경북대 온실기체 관측센터에서 2008∼2017년 실시간 연속 측정한 CFC-11 농도 자료를 살폈다. 일본 국립환경연구소 하테루마섬 관측소 자료를 대기ㆍ화학 역추적 모델로 뜯어보기도 했다.

그 결과 최근 보고된 CFC-11 배출 증가량 상당 부분이 산둥성과 허베이성 등 중국 동부에서 기원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런 경향은 2013년 이후에 두드러졌고, 해당 기간 중국에서 추가로 늘어난 배출량은 연간 7000t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전 지구 프레온가스 증가량의 40∼6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머리 속 ‘공포 기억’ 시작자극으로 없애는 원리 밝혀내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시각자극을 이용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료하는 치료가 효과를 내는 이유를 동물 실험을 통해 처음으로 입증하는데 성공한 백진희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원이 뽑혔다.

현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법의 하나로 환자가 공포기억을 회상하는 동안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게 시각적 자극을 주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트라우마 치료 효과가 있어 정신과 치료에 사용됐으나, 그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연구진은 EMDR을 생쥐에게 적용한 실험을 통해 치료효과 원리를 밝혀냈다. 생쥐의 공포반응 감소 효과가 시각적 자극을 받아들인 상구에서 시작해 중앙 내측 시상을 거쳐 편도체에 이르는 신경회로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정신과에서 활용되는 심리치료법의 효과를 동물실험으로 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경험적으로만 확인된 심리치료 기법의 효과를 동물실험으로 입증해 치료법의 과학적 원리를 밝혔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3.퇴행성관절염은 노화 때문? 범인은 콜레스테롤!

사람의 퇴행성관절염 연골. 사진의 왼쪽 부위는 정상연골이 남아 있고 오른쪽 부위는 연골이 완전히 마모되어 아래쪽 뼈가 노출되어 있다.(왼쪽) 생쥐모델의 퇴행성관절염. 생쥐에서는 DMM 수술로 사람의 경우와 유사한 퇴행성관절염을 유도할 수 있다. 대조군(Sham)에서는 적색으로 나타난 온전한 연골조직이 보이나 DMM 수술을 한 경우 연골조직이 파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사람의 퇴행성관절염 연골. 사진의 왼쪽 부위는 정상연골이 남아 있고 오른쪽 부위는 연골이 완전히 마모되어 아래쪽 뼈가 노출되어 있다.(왼쪽) 생쥐모델의 퇴행성관절염. 생쥐에서는 DMM 수술로 사람의 경우와 유사한 퇴행성관절염을 유도할 수 있다. 대조군(Sham)에서는 적색으로 나타난 온전한 연골조직이 보이나 DMM 수술을 한 경우 연골조직이 파괴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세계 최초로 관절 연골 콜레스테롤이 퇴행성관절염을 이르키는 원인임을 증명한 전장수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도 생명과학 분야의 ‘올해의 기초 연구자’로 선정됐다.

퇴행성관절염은 뼈 사이의 마찰을 줄여주는 관절 연골이 점점 닳아 없어져 생기는 염증으로, 60살 이상 인구의 30%에서 발병하는 질환이다. 그동안 퇴행성관절염이 노화에 의한 질병이라고 인식된 탓에, 예방에 대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었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퇴행성관절염의 원인이 노화가 아니라 콜레스테롤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생쥐에게 고농도 콜레스테롤 먹이를 먹이자 퇴행성 관절염의 진행이 빨라지고, 정상연골에 비해 퇴행연골에서 콜레스테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유입돼 증가됨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퇴행성 관절염의 예방 및 치료법 개발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G단백질수용체’ 약물 전달 과정 규명

의약학 분야에서는 생체신호나 약물이 세포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단백질인 ‘G단백질수용체(GPCR)’의 구체적인 작동 과정을 밝혀낸 정가영 성균관대 약학부 교수팀이 선정됐다.

국제연구진은 G단백질수용체와 G단백질의 결합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조 변화의 과정 밝혀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국제연구진은 G단백질수용체와 G단백질의 결합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조 변화의 과정 밝혀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G단백질수용체(GPCR) 연구는 201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지만, 수용체가 G단백질과 결합했을 때의 구조를 이용해 약물의 효과를 높이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연구팀은 G단백질수용체가 외부 신호와 결합해 세포 내 반응을 유도하기까지 순차적인 구조 변화를 규명했으며, 나아가 약물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G단백질수용체의 구조도 제시했다.

정 교수는 “노벨상 이후 주목받아 온 G단백질수용체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론을 제시했다”며 “G단백질수용체에 작용하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새로운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돌멩이, 계란 껍데기에도 붙는 만능 ‘전자 소자’ 개발

GIST 연구팀, 평면 반도체 공정서 3차원 전자소자 제조 기술 개발  (서울=연합뉴스)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흥조 교수 연구팀이 기존 평면 반도체 공정에서 3차원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국연구재단이 19일 밝혔다.  고흥조 교수는 "기존 반도체 공정기술로 만든 고성능 평면 전자소자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장치, 생체 로봇 등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3차원 전자소자. [사진 한국연구재단 제공]

GIST 연구팀, 평면 반도체 공정서 3차원 전자소자 제조 기술 개발 (서울=연합뉴스)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흥조 교수 연구팀이 기존 평면 반도체 공정에서 3차원 전자소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국연구재단이 19일 밝혔다. 고흥조 교수는 "기존 반도체 공정기술로 만든 고성능 평면 전자소자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며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장치, 생체 로봇 등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3차원 전자소자. [사진 한국연구재단 제공]

ICT 융합 분야에는 돌멩이나 나뭇가지와 같은 울퉁불퉁한 표면에 붙일 수 있는 전자소자를 개발한 고흥조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대다수 자연 속 사물은 대체로 표면이 평평하지 않아 고성능ㆍ고집적 전자소자를 제작하거나 붙이기 어려웠다. 고 교수의 ‘전사 인쇄 기술’은 기판 아랫면에 튜브형 나노 섬모 구조체를 넣어 접착력을 높였다. 생활에서는 계란 껍데기에 온도센서를 붙여 신선도를 파악하거나 자연환경을 모니터링하는 센서를 돌멩이에 부착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자성메모리(M램)의 숨겨진 자기 상호작용 규명한 정명화 서강대 교수(자연과학) ▶남극 해양 물질의 순환과정을 규명한 이성근 충북대 교수(생명과학) ▶스팅을 이용한 차세대 면역항암 치료방안을 제시한 김찬 차의과대학 교수(의약학) ▶초음파 구동 마찰전기 기반 체내 충전기술을 개발한 김상우 성균관대 교수(공학) ▶유기단분자 열전도도를 규명한 장성연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교수(ICT 융합) 가 2019년의 기초연구자로 선정됐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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