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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구설에도 믿고 쓴다, 文의 '김현종 사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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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유독 세간에 오르내리는 인물이 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의 얘기다. 통상교섭본부장이던 김 차장의 안보실 입성은 올해 2월 28일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기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강경화 등 외교안보 라인과 불화에도 #대일 강경, 대등한 외교 노선 확고하고 #미사일 지침 등 자주 국방 구상 주도

그 뒤로 11개월, 김 차장은 깐깐한 업무 스타일이 더 자주 회자됐다. 4월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충돌했고, 9월 유엔총회 땐 ‘무릎 꿇은 외교관’ 사건, 이달에는 2차장 산하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과의 불화설까지 구설에 올랐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2월 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오는 23·24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과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한-일 정상회담 및 한-중-일 회의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12월 2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오는 23·24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과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한-일 정상회담 및 한-중-일 회의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도 한쪽에선 여전히 “김 차장만의 쓰임새가 분명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곁에 두는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차장의 장점도, 단점도 대통령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김 차장은 청와대 안에서 ‘직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가는 곳마다 에피소드 제조기

11월 26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제1세션 시작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회의 준비를 하며 오가고 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

11월 26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제1세션 시작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회의 준비를 하며 오가고 있다.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제공]

김 차장과 관련한 일화는 정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이끌었던 김 차장이 안보실 2차장에 낙점된 직후 워싱턴에선 “이번 청와대 인사의 의미가 뭐냐”를 묻는 당국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거침없는 협상 스타일로 이미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김 차장을 거론하면서 “he’s a character”라는 한 줄 묘사하는 당국자도 있었다. ‘독특한 사람’ 내지는 ‘한 성격 한다’는 의미에서다. 3월 말 안보실 2차장 자격으로 처음 방미했을 때도 “‘빅 피쉬(big fishㆍ거물)’들만 접촉하려 한다”는 뒷말이 나왔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7월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방한했을 때는 언쟁을 벌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4월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때 외교부 직원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강경화 장관과 언성을 높였다. 강 장관은 9월 국회 외통위에서 불화설 관련 질의가 나오자 “부인하지 않겠다”며 인정했다. 이틀 후 김 차장이 트위터에 “외교 안보 라인 간의 이견에 대한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자숙의 뜻을 밝힌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자숙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반면 김 차장은 본인과 스타일이 맞고 “일을 잘 한다”고 여기는 부하 직원은 끝까지 신뢰하고 정부 부처 인사까지 손수 챙겨준다는 후문이다.

결자해지한 지소미아 카드

'지소미아 종료선언' 사흘 만인 8월 25일 오전 독도에서 해병대원들이 독도에 상륙해 훈련하고 있다. 군은 지난 6월 실시하려던 독도방어훈련을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미뤄왔다. [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선언' 사흘 만인 8월 25일 오전 독도에서 해병대원들이 독도에 상륙해 훈련하고 있다. 군은 지난 6월 실시하려던 독도방어훈련을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미뤄왔다. [연합뉴스]

김 차장이 존재감을 부각한 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사태 때였다. 김 차장은 예전부터 “협상가는 예측 불허하게 움직여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판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써왔는데 지소미아 종료가 정확히 그런 사례였다. 김 차장은 8월 NSC에서 주무부처 장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소미아 종료’를 관철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청와대가 대일 강경 노선을 위해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체제를 잘못 건드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11월 ’종료 유예 결정‘으로 임시 봉합은 됐지만 “미국에 한국을 안보 전략 차원에서 불안한 나라로 인식시켰다”는 우려가 나온 것이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보면 지소미아 카드를 통해 일본은 수출규제 대화에 응했다. 눈길을 끄는 건 지소미아 카드를 던진 것도, 다시 이어 붙인 것도 김 차장이었다는 점이다. 김 차장은 11월 23일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워싱턴으로 날아가 백악관 NSC의 매슈 포틴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담판‘하고 돌아왔다.

막판 미국의 중재로 일본은 수출규제 철회를 전제로 한 당국 간 협의에 응하는 대신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단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는데 김 차장의 방미가 분기점이 됐다고 한다. 한 대미 소식통은 “’종료 유예‘ 결정을 놓고도 한국이 스스로 종료했다 번복하는 모양새를 놓고 NSC 안에서 반대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번에도 김 차장이 유예 쪽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차장의 '빅 픽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8월 NSC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있고 나서 김 차장은 “이번 결정이 한·미 동맹 약화가 아니라 한·미 동맹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차장은 ’한ㆍ미 동맹 업그레이드‘ 파트가 청와대 내 자신의 역할로 본다고 한다. 온갖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대목이 문 대통령의 김 차장 사용법이란 얘기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물밑 협상 중인 한ㆍ미 미사일 지침 개정도 그중 하나다. 미사일 지침 개정은 현재 800㎞로 묶여 있는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한국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개발 제한을 푸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가운데 고체연료 제한 완화는 소형 인공위성 개발에 꼭 필요하다. 한국이 절대 열세로 현재 미국ㆍ일본 등에 의존하는 감시ㆍ정찰자산을 확보하는 것과도 직결된다. 물론 미사일 지침 개정은 2017년 8월 양국 외교장관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으로, 김 차장 혼자 이 문제를 끌고 가는 것으로만 볼 순 없다. 그럼에도 김 차장이 물밑에서 관련 협상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 차장이 관여하는 방위력 개선사업은 문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삼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반환 문제와도 연동돼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방위력 개선비 연평균 증가율은 11%대로, 전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5.3%)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트럼프 정부 안보 전략과도 맞아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2월 13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고 있다. 김 차장은 "최근 한반도 정세, 방위비분담 등 한미 동맹 현안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지금의 한미동맹이라면 어떠한 난제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자신하게 됩니다"고 썼다.[트위터 캡처]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2월 13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고 있다. 김 차장은 "최근 한반도 정세, 방위비분담 등 한미 동맹 현안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지금의 한미동맹이라면 어떠한 난제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자신하게 됩니다"고 썼다.[트위터 캡처]

김 차장의 구상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ㆍ중 전략경쟁에 대처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에 군사ㆍ안보 분야의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사거리 500~5500㎞) 배치 구상은 아시아 안보 지형에 또 다른 지각변동을 일으킬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8월 미 정부는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수개월 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고 싶다”(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고 밝혔다. 미국의 INF 탈퇴와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에서는 개발 제한이 없어 압도적인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과 가까운 곳에 미국의 지상발사형 미사일이 배치될 경우 ‘제2의 쿠바 사태(1962년 소련이 미국의 사정권인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했던 일화)’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도입 때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경제 보복을 당했던 전례가 있고, 북한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대신 미국에 동맹 기여 차원에서 현재 800㎞로 제한된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자체 국방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과도 방향성이 맞는다. 김 차장이 공개적으로 중거리 미사일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큰 그림'을 중시하는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강점도, 약점도 뚜렷한 이슈 메이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스웨덴 정상회담 전 김현종 2차장(가운데), 조세영 외교부 차관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왼쪽)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스웨덴 정상회담 전 김현종 2차장(가운데), 조세영 외교부 차관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강점도, 약점도 뚜렷한 김 차장이 지소미아에 이어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어떤 드라마를 연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문 대통령의 김현종 차장 사용법에 달렸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 전까지 외교안보라인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총선 영입설도 아직 살아있다. 여당 내에서 “김현종이나 강경화 한 명은 차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강 장관은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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