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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희철의 졸음쉼터

최민수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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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후회하지도 (않고), 상대방을 용서할 수도 없다.”

보복운전 혐의로 재판받던 배우 최민수씨가 지난 20일 남긴 말이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언급이라기엔 모순적인 언행이다. 이날 항소심은 최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그런데 최씨는 여전히 분노한다. 심지어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은 최씨를 옹호하는 분위기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분노를 경험한 운전자가 많아서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고 차량 뒤에서 운전하던 최씨는 선행 차량이 갑작스럽게 끼어들면서 보조석에 타던 사람이 들고 있던 음료수가 쏟아질 정도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후에도 선행 차량은 2개 차선을 걸친 채 계속 서행을 했다.

사실 최씨가 급브레이크를 안 밟았다면 두 차량은 추돌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운동 신경이 있는 운전자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급제동을 한다. 하지만 사고를 유발한 차량은 후방 운전자의 배려를 모른 채 유유히 떠나간다.

자의로든 미숙해서든 이렇게 이기적인 주행습관을 가진 운전자 한 명은 수많은 사람의 시간을 좀먹는다. 이런 차량 한 대가 교통에 얼마나 지장을 주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보복운전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사람들이 더 분개하는 건 이런 상황에 깔린 하부구조다. 사태 파악을 못한 운전자는 아이러니하게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안 받는다. 최씨 같은 다혈질 운전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뒤쫓아 가서 나름 ‘정의를 구현’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운전자는 평생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갈 테니 말이다.

법적으로 최씨는 당연히 유죄다. 선행 운전자에게 보복하기 위해서 추월 후 급제동을 했고, 말다툼 과정에서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등 모욕적인 언행을 구사했다. 다만 유죄 판결과 동시에 판결문이 순진무구한 분노 유발자, 전방 운전자에게 일말의 경고 문구를 기록했다면 도로의 부조리는 조금이나마 정의로워졌을 것이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