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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부탁하면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24)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었는데, 그 중 꼽자면 바로 정신질환자 범죄가 아닌가 싶다. 5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강북삼성병원 의사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위와 같은 사건들은 보통의 시민들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 나도 범죄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정신질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있었다.

2017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는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신질환이 심한 경우에는 본인을 위해서는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법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입원하는 것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는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는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정신질환과 관련된 대표적인 법률로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다. 줄여서 정신건강복지법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정신보건법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2016년 전면개정을 통해 명칭이 바뀌었다.

현행 법률을 기준으로 입원 유형을 살펴보자. 자발적인 입원으로는 환자 스스로 신청해 입원하는 ‘자의입원’과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아 입원하는 ‘동의입원’이 있다. 두 입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환자가 퇴원을 요청하는 경우 자의입원의 경우에는 지체없이 퇴원시켜야 하지만 동의입원의 경우에는 72시간까지 퇴원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지는 입원으로는 보호의무자가 입원을 신청하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장·군수·구청장의 의뢰에 의한 ‘행정입원’,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큰 사람을 발견한 사람이 의사과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 입원을 의뢰하는 ‘응급입원’이 있다.

위 입원유형 중 현실적으로는 보호의무자, 그 중에서도 가족에 의한 입원이 가장 많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정신보건시설에 입원한 경우 중 58%가 가족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었다. 문제는 과거 정신질환 치료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사실상 감금의 수단으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법, 부당한 입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2016년 법률이 전면 개정되기 전에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의 진단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호입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유형 중 보호의무자, 그 중에서도 가족에 의한 입원이 가장 많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정신보건시설에 입원한 경우 중 58%가 가족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었다. [사진 pixabay]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유형 중 보호의무자, 그 중에서도 가족에 의한 입원이 가장 많다. 2015년 통계를 보면 정신보건시설에 입원한 경우 중 58%가 가족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었다. [사진 pixabay]

결국 2016년 헌법재판소에서는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근거로 ① 입원치료·요양을 받을 정도의 정신질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 ②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보호입원의 요건으로 하면서 보호의무자와 정신질환자 사이의 이해충돌을 적절히 예방하지 못하고 있는 점, ③ 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권한을 정신과전문의 1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그의 자의적 판단 또는 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점, ④ 보호의무자 2인이 정신과전문의와 공모하거나, 그로부터 방조·용인을 받는 경우 보호입원 제도가 남용될 위험성은 더욱 커지는 점, ⑤ 보호입원 제도로 말미암아 사설 응급이송단에 의한 정신질환자의 불법적 이송, 감금 또는 폭행과 같은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점, ⑥ 보호입원 기간도 최초부터 6개월이라는 장기로 정해져 있고, 이 또한 계속적인 연장이 가능하여 보호입원이 치료의 목적보다는 격리의 목적으로 이용될 우려도 큰 점, ⑦ 보호입원 절차에서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절차들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제시했다.

이처럼 과거 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면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입원이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강제입원이 결정되었더라도, 강제입원 결정이 적합했는지 여부를 다시 심사하도록 하는 ‘입원적합성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18년 5월부터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 여부를 입원적합성심사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참고로, 비자의 입원이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과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원'을 말한다.)

입원적합성 심사 시 고려하는 주요 사항으로는 입원이나 이송 과정에서 강압성은 없었는지, 입원 치료의 필요성이 인정되는지, 자·타해 위험성이 인정되는지, 증빙서류를 모두 구비하였는지 등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입원적합성 심사위원회 신설 이후 심사 건 수는 올해 8월말까지 1년 3개월 동안 4만 4279건이었다. 이 중 퇴원·퇴소가 결정된 건 수는 663건이라고 한다. 퇴원 퇴소가 결정된 663건의 사유는 증빙서류 미구비나 이송과정의 부적합 사유 적발 등 ‘절차적 요건 미충족’이 474건(71.5%), 자·타해 위험이 불명확하고 입원이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 된 ‘진단결과서 소명 부족’이 172건(22.9%), 기타 입원보다 지역사회 돌봄 등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등이 37건(5.6%)이었다.

위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입원적합성심사를 통해 퇴원·퇴소가 결정되는 경우 중 대부분이 증빙서류를 구비하지 않거나 강압적으로 병원에 이송하는 등 절차적 요건에 반하는 경우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입원 치료를 거부해 가족들이 힘으로 제압해서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오는 등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다른 곳에 가자고 속여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경우다. 이러한 경우 ‘그럼 어떻게 병원으로 데려오냐’는 환자 가족들의 마음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 되지만, 불법성이 분명해 퇴원 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밖에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1명의 동의서만 제출된 경우에도 부적합 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는 물론 사회 보호 측면에서 보더라도 강제입원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환자 가족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pxhere]

환자는 물론 사회 보호 측면에서 보더라도 강제입원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환자 가족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pxhere]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환자 가족의 요청이 있었더라도 정신과전문의의 진단 없이 정신질환자를 집에서 강제로 끌어내 정신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감금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사설 응급환자 이송서비스업체 운영자와 직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례도 있다. 불법적 강제입원은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힘들게 입원을 시켰는데 절차적 요건 미비로 퇴원이 결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호의무자 동의서 등 관련 서류를 빠짐없이 준비해야 한다. 특히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가급적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설득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불법성 시비를 줄일 수 있다.

이상 정신질환자 입원에 관련된 요건 등에 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환자는 물론 사회 보호 측면에서 보더라도 강제입원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리에 대한 책임을 환자 가족들에게만 부담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신건강 문제는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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