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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만능주의 불평등 vs 평등주의 독재…2500년 된 딜레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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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호 28면

김대식의 ‘미래 Big Questions’ 〈8〉 자유·평등

보리스 쿠스토티에프(1878~1927), ‘볼셰비키혁명’. [사진 모스크바 트레트야노브 갤러리]

보리스 쿠스토티에프(1878~1927), ‘볼셰비키혁명’. [사진 모스크바 트레트야노브 갤러리]

1만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누군가가 했을 만한 질문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만 했다. 돌로 가득한 땅을 갈고, 물을 뿌렸고, 거름을 주었다. 손과 발은 온통 물집투성이다. 나만이 아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아내의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휘어진 허리 때문에 이젠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사냥을 나가면 먹을 게 천지였다. 이젠 온종일 일해도 돌아오는 건 굶주림뿐이다.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데, 윗동네 사는 어르신의 집에선 날마다 먹다 남은 뼈와 빵이 길바닥으로 던져지는 걸까? 왜 내 아이들은 그들이 버린 뼈를 빨고 있어야 하는 걸까?”

사냥·채집 시대 역사상 가장 평등 #1만년 전 농사 지으며 부의 대물림 #법 앞의 평등, 표현의 자유 보장 때 #자유·평등 함께 만족한 사회 될 것

네덜란드 화가 얀 스틴의 1654년 그림에서 우리도 질문할 수 있다. 세상은 왜 불공평하고 불평등할까? 왜 돈 많은 델프트 시장의 딸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우아하게 산책하러 나갈 때 거지의 아이는 엄마와 함께 구걸해야 하는 걸까? 불평등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평등한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동물의 세상에서 평등이란 무의미한 개념이다. 적어도 사회적 집단에서 사는 대부분 포유류의 세상에서는 말이다. 사자, 하마, 고릴라 모두 알파 두목만이 암컷과 먹잇감을 독점한다. 불평등을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는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 모든 자원을 한 사람이 독점하면 1, 반대로 사회적 자원을 모든 구성원이 동일하게 나눠 가진다면 0으로 표현되는 지니 계수에 따르면 사자, 하마, 고릴라 세상은 1에 가까운 지니 계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극단적 불평등은 전쟁·혁명 등 통해 해소

얀 스틴 (1626~1679), ‘델프트 시장’.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얀 스틴 (1626~1679), ‘델프트 시장’.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불평등이 극치인 동물과 야생의 세상. 먹잇감을 사냥하고 맹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가진 유일한 경쟁력이라고는 큰 뇌뿐이던 인간은 언젠가 이해했을 것이다. 오로지 협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사슴 한 마리보다 매머드 한 마리를 잡는 게 당연히 더 좋겠다. 매머드는 혼자 사냥할 수 없다. 수십 명이 함께 노력해야 거대한 동물을 잡을 수 있다. 만약 알파 두목이 사냥한 매머드 고기를 혼자 차지하려 한다면? 아무리 힘센 두목도 수십 명 성인 남성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한 사람의 독점이 아닌,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가지는 평등한 사회에서만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다.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하던 시대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평등한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보다 더 “도덕적”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여전히 사냥과 채집을 하는 아마존 원주민들 역시 가장 먼저 식구와 아이들을 챙기려 한다. 꿀과 고기와 과일을 숨기려고 시도하지만, 만약 발견되면 대부분 큰 저항 없이 공동체와 공유한다. 반대로 공동체는 소문과 수다를 통해(누가 맛있는 걸 숨기려 한다더라…) 남들보다 더 많은 걸 가진 자를 찾아내고 왕따시킨다. 수다와 소문은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민간인 사찰’ 도구로 시작되었기에 가장 평등한 사회는 어쩌면 동시에 프라이버시가 불가능한, 가장 자유롭지 않은 사회라고 가설해볼 수 있다.

약 1만 년 전 농업의 발전은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사냥과 마찬가지로 농사 역시 대규모 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협업을 해야 한 사냥이 평등한 사회를 가능하게 했다면, 역시 협업을 요구하는 농업은 어떻게 사회 불평등의 기원이 된 걸까? 생산성과 결과물의 차이 때문이다. 사냥의 결과물은 빨리 상하고 쉽게 썩는다. 사냥과 채집을 본업으로 삼았던 시대 생산과 소비를 최대한 같은 시기에 해야 하는 이유다. 소비와 생산이 대부분 동시에 일어나기에 부가 누적될 수 없다. 농사는 다르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날 필요 없기에, 지금 소비할 수 없는 것들도 미리 생산할 수 있다. 능력과 상황, 그리고 우연의 결과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하기 시작한 이유다. 한번 시작된 불평등은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커진다. 부와 가난 모두 다음 세대로 상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전통과 종교 그리고 정부와 법 모두 소유와 세습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중간층이 위와 아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회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부유층과 빈곤층을 합친 계수보다 중산층이 더 많아야 사회가 잘 굴러간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도 주장할 수도 있겠다. 인간은 다양한 능력과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더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이 소유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개인 자유 노력의 결과를 사회가 재분배하는 건 폭력이다.

스탠퍼드대 역사학자 월터 샤이들(Walter Scheidel)은 인류 역사상 극단적 불평등은 오로지 전쟁, 혁명, 국가 몰락 또는 대규모 전염병만을 통해 해소되었다는 우울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 우리는 과연 역설적인 이 두 가치를 동시에 그리고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까?

기원전 6~7세기 아테네는 폭발 직전이었다. 관행과 세습을 통해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귀족과는 반대로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대부분 시민. 귀족 출신 솔론(Solon)은 귀족의 권력을 견제하고 시민의 힘을 키워주는 헌법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 후 정치인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서민들의 지지를 받는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참주(tyrant)가 되지만, 정권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히피아스는 독재 정치를 시도하다 결국 추방되고 만다. 새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는 고민에 빠진다. 솔론의 헌법개혁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포퓰리즘 모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과 서민, 가진 자와 없는 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은 폭정과 독재를 탄생시켰다. 지나친 자유는 불평등을 만들지만, 지나친 평등은 자유를 억압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의원제다. 모든 시민이 동시에 모여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에, 대리인을 선출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대리인을 뽑느냐는 점이다. 원래 고대 아테네는 다양한 부족의 합집합이었다. 친척 관계를 유지한 부족의 의견을 대표하는 대리인의 모임을 통해 중요한 결정을 했다. 솔론 개혁의 핵심은 아테네 시민들을 유전적 관계가 아닌 경제적 조건을 기반으로 분리했다는 점이다.

솔론의 개혁에는 맹점이 하나 있었다. 아테네 시의원들은 전체 공동체가 아닌 본인이 소속한 경제계층의 이기적 아젠다만을 지지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혁신적인 제안을 한다. 시의원들을 더는 출신과 경제적 조건이 아닌 그들이 사는 지역에 따라 랜덤으로 선발하자는 제안이었다. 오늘날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들이 사용하는 지역구 기반 대의원 제도의 시작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 혁신적 대의원제 제안

클레이스테네스는 새로운 개념의 평등과 자유를 제안한다. 바로 법 앞에서의 평등(isonomia)과 표현의 자유(isegoria)였다. ‘자유’는 모든 것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평등’은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 무질서한 자유가 아닌 개인의 의견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모두가 똑같아야 하는 독재적 평등이 아닌 법 앞에서의 평등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만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이었다.

2500년이 지난 오늘, 클레이스테네스의 꿈은 여전히 실천되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능력 만능주의적 불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평등주의 독재를 오가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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