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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는 여럿이 즐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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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故) 남궁련 대한조선공사 회장의 막내 아들인 남궁견씨가 국보 145호인 '귀면청동로'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은 맏아들 남궁호씨.

고(故) 남궁련씨.

"가족끼리 보는 것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보니 유물들이 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남궁호 메트로신문 발행인)

"그게 바로 명품입니다. 명품의 가치는 관객과 함께 살아납니다."(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25일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올 2월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남궁련(사진) 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회장이 평생 모은 문화재 256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보 145호로 지정된 '귀면청동로'(鬼面靑銅爐.도깨비 얼굴이 달린 청동 풍로)도 포함됐다.

기증식장에는 고인의 장남인 남궁호(64)씨와 4남 남궁견(50.메트로신문 감사)씨가 참석했다. 남궁호씨는 "선친께선 생전에 평생 아껴온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할 뜻을 여러차례 밝히셨다"며 "선친의 유업을 이루게 돼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

기증품은 대부분 고려청자.조선백자 같은 도자기류다. 세 가지 흙을 섞어 대리석 비슷한 무늬를 빚어낸 '청자연리문완'(靑磁練理文碗), 단정하고 우아한 미가 돋보이는 '백자병'(白磁甁) 같은 '보물급' 유물들이다.

고(故) 남궁련 회장은 우리 문화재에 남다른 사랑을 간직했던 기업인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50년대 초반부터 도자기를 중심으로 문화재를 수집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인의 마음을 달래고, 민족문화의 정수인 문화재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4남 남궁견씨는 "선친께선 문화재는 여러 사람이 즐겨야 하는 법이라며 좋은 물건을 구입하시면 지인들을 불러 함께 보시곤 하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해방 직후 극동기업을 설립한 이후 줄곧 한국경제 발전의 중심에 있었다. 경기도 양주군(현 서울시 방학동)의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또한 젊어서부터 문화재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일보 사장.금융통화위원.대한조선공사 사장을 지내면서도 외국 경매시장, 서울 인사동 등에서 우리 문화재를 꾸준하게 사들였다.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가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지론을 평생 실천한 것이다.

이번 기증품은 100억 원대에 이르는 규모다. 남궁호씨는 "유물을 돈으로 따져본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로부터 최소한 그 정도는 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문화재는 공유해야 한다는 선친의 뜻에 가족 모두 선뜻 동의했다"고 기증 배경을 설명했다.

고인이 중앙박물관에 문화재를 기증한 것은 올해로 세 번째다. 1997년과 99년에 각각 '청자대접'과 '금동여래좌상'(삼국시대)을 내놓았다. 이번에도 서울대 박물관에 100여 점을 함께 기증했다. 영국 브리티시 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도 고인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

글.사진=박정호 기자, 안경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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