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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표·지성 산타가 찾아왔다, 꿈많은 남수단 청년 '꿈같은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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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최빈국 남수단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스무살 청년 마틴(Martin Sawiㆍ20)은 최근 꿈만 같은 하루를 보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주인공들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누빈 두 축구 영웅 이영표(42)ㆍ박지성(38)과 함께 하며 귀한 조언을 들었다.

마틴의 꿈이 이뤄진 무대는 지난 20일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열린 ‘나눔 어스 토크 콘서트’다. 대한축구협회 산하 축구사랑나눔재단이 개최한 이 행사에서 췌장암 투병 중인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위해 기부금 모금 행사를 진행했는데, 최고액 기부자를 이영표가 직접 자신의 차로 에스코트해 콘서트장까지 이동하는 스페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마틴은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이영표와 만났다.

가난한 아프리카 청년 마틴이 ‘기부왕’이 된 건 의지할만한 멘토를 만나게 해주고픈 한국인 ‘키다리 아저씨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 기능성 스포츠웨어 ‘스켈리도’ CEO 윤진혁 대표와 체험형 축구 테마 파크 ‘풋볼 팬타지움’을 운영하는 정의석 대표가 의기투합해 마틴의 이름으로 대신 기부하고 이영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에 축구 유학 온 남수단 청년 마틴 사위가 한국 축구 영웅 이영표와 만났다. [사진 축구사랑나눔재단]

한국에 축구 유학 온 남수단 청년 마틴 사위가 한국 축구 영웅 이영표와 만났다. [사진 축구사랑나눔재단]

마틴은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풋볼팬타지움에서 이영표와 만나 인사를 나눈 뒤 광화문 행사장까지 축구와 삶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함께 이동했다. 래퍼 비와이의 축하공연을 비롯해 토크 콘서트를 즐긴 마틴은 이영표의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 자리에 갔다가 ‘깜짝 게스트’ 박지성과도 조우했다.

현역 시절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박지성)와 토트넘 홋스퍼(이영표)에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누빈 두 축구스타와 꿈 같은 시간을 보낸 마틴은 “2019년 12월20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축구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젊은이로서 어떤 꿈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조언을 들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 두 선수와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마틴은 17살이던 지난 2016년 한국 땅을 밟았다. 스켈리도가 산하 공익법인 ‘스켈리도 블루 재단’을 통해 진행한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된 결과다.

한국에 축구 유학 온 남수단 청년 마틴 사위는 박지성과 만나 조언을 들었다. [사진 마틴 인스타그램]

한국에 축구 유학 온 남수단 청년 마틴 사위는 박지성과 만나 조언을 들었다. [사진 마틴 인스타그램]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는 신체 능력은 탁월하지만 체계적인 훈련 기회가 부족한 아프리카의 축구 유망주를 발굴해 한국축구 시스템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실행됐다. 마틴은 ‘아프리카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의 심사를 거쳐 10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선발돼 한국행 기회를 잡았다.

스켈리도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지구 반대편으로 ‘축구 유학’을 온 마틴의 성장과 적응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생활비와 학비는 물론,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위한 개인 훈련 비용까지 지급하며 전폭 지원했다. 3년 사이에 기량이 일취월장한 마틴은 남수단 청소년대표를 거쳐 최근 A대표팀 멤버로 발탁돼 A매치 3경기를 뛰었다.

지난 3년간 축구 실력 만큼이나 마틴의 한국어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한국말을 사용해도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다. 마틴이 ‘K리그 진출’을 1차 목표로 정한 건 꾸준히 K리그 경기를 시청하며 꿈을 키운 이유도 있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장점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남수단 축구선수 마틴은 이영표와 함께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기원했다. [사진 축구사랑나눔재단]

남수단 축구선수 마틴은 이영표와 함께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기원했다. [사진 축구사랑나눔재단]

마틴은 올해 5부리그(K3 베이직)격인 고양시민축구단 소속 공격수로 활약했다. 내년에는 새롭게 출범하는 K3리그(3부리그) 소속 클럽으로 이적해 보다 높은 무대에 도전할 예정이다. 마틴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K리그 몇몇 구단들이 ‘육성형 용병’으로 점찍고 꾸준히 관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프로 무대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임흥세 감독은 “3년 전 남수단 국내에서 오디션을 통해 마틴을 선발할 당시 국민적인 주목을 받았다”면서 “마틴의 성장 스토리가 꾸준히 남수단 언론을 통해 현지 축구팬들에게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틴은 “2002 월드컵 이후 유럽 무대에 도전한 이영표ㆍ박지성 선수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직접 들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면서 “팬들이 지어준 내 별명(남수단 네이마르)처럼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마틴을 발굴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 중앙포토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마틴을 발굴한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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