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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싱크홀 한달 전 도로 균열···市는 "이상없음" 결론 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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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1일 발생한 일산신도시 땅 꺼짐(싱크홀) 사고 한 달 전 인근에서 도로 균열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고양시가 보름간 안전 진단을 하고 공사가 재개된 뒤 주변 도로에서 싱크홀 사고가 난 게 알려지자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4일 고양시와 주민들에 따르면 백석동 지하 5층, 지상 10층짜리 주상복합건물(오피스텔) 공사장 인근 도로에서 21일 땅 꺼짐이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약 40m 떨어진 곳에서는 한 달 전인 지난달 20일부터 3차로 도로 약 30m 구간에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균열이 발생했다. 이곳은 공사현장 바로 옆이다.

이에 오피스텔 공사 시공사 측이 이런 사실을 고양시에 알렸고, 시는 곧바로 공사를 중단시키고 전문가들과 함께 지표투과 레이더(GPR) 검사 등을 통해 인근 도로의 땅 밑 상태를 점검했다. 시가 점검한 범위에는 21일 땅 꺼짐이 발생한 도로 구역도 포함됐는데 이곳에서는 물 비침(지하수 유입) 현상을 포착하기도 했다.

시는 이후 15일간의 조사 끝에 ‘이상 없음’ 결론을 내렸고, 오피스텔 신축공사는 지난 4일부터 다시 시작됐다. 균열이 발견된 후 오피스텔 시공업체 측은 균열이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자동화 계측 장비 12대를 설치했지만, 이번에 땅 꺼짐이 발생한 지점에는 계측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고양시 관계자는 “21일 싱크홀이 발생한 지점은 당시엔 이상이 없는 거로 나와 공사가 재개됐다”고 말했다.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오피스텔 공사장 옆 도로에서 지난달 20일부터 도로에 균열이 발생한 뒤(빨간선 ) 지난 21일에는 싱크홀(파란선)이 났다. 김준영 기자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오피스텔 공사장 옆 도로에서 지난달 20일부터 도로에 균열이 발생한 뒤(빨간선 ) 지난 21일에는 싱크홀(파란선)이 났다. 김준영 기자

“검사 후 지하 4층으로 추가 굴착하다 사고”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안상로 한국지하안전협회장은 “시공사가 지하 3층까지 굴착한 상태에서, 지면에 균열이 나서 시에다가 검사를 의뢰했다. 균열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싱크홀이 난 곳과 균열이 났던 곳은 다른 곳”이라며 “어쨌든 당시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었고, 검사가 끝난 후 시공사가 지하 4층으로 추가 굴착을 하다가 싱크홀이 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혹시 모르니 자동화 계측기를 설치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산신도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24일 오전 만난 인근 상가 주인은 “오피스텔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동네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지하로 파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도로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겼고, 불안감에 시에다가 민원 넣은 주민도 한둘이 아닌데 이번 땅 꺼짐 사고가 발생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신축공사 현장 옆 도로에서 '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신축공사 현장 옆 도로에서 '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일산신도시 모든 공사 중단하고 안전진단해야” 

채수천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인근 도로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지자체의 점검이 있고 난 후 가까운 곳에서 이번에 땅 꺼짐 사고가 난 것은 균열 점검이 허술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채 회장은 “주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연약 지반인 일산신도시 모든 공사장에 대한 공사를 일단 중지시키고, 정밀 안전진단을 시행해야 하는 위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30분쯤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1355번지 오피스텔 신축공사장 인근에서 왕복 4차로 도로와 인도 일부가 침하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알미공원 사거리 신축공사 현장 옆 길이 50m, 폭 25m 구간 도로가 1m 깊이로 주저앉거나 노면에 균열이 생겼다. 지하 3층 바닥 콘크리트 타설 후 지하 4층 터파기 공사 중 도로가 침하했다.

땅꺼짐 사고 향후 대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땅꺼짐 사고 향후 대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고양시는 복합건물 신축 공사 현장 지하에서 흙막이 공사를 잘못해 발생한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지하 4층 땅속 철근에 콘크리트를 부어 세운 흙막이 벽인 ‘슬러리 월’(slurry wall) 이음 부위로 물이 새 나온 게 확인됐는데 이게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백석동에서는 2017년 2월과 4월에 4차례에 걸쳐 도로 균열과 침하 현상이 발생하고 지하수가 유출되는 사고가 났다. 지난해 12월 4일에는 한국지역난방공사 고양지사 지하 배관이 파열되는 사고로 1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신축공사 현장 옆 도로에서 '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신축공사 현장 옆 도로에서 '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고양시장 “지하 3층까지만 굴착 허용 방침”

이재준 고양시장은 이번 땅 꺼짐 사고와 관련해 “백석동 일대가 연약한 지반이라는 점과 지하수 수위 등을 고려해 앞으로 지하 3층까지만 굴착을 허용하겠다”고 23일 밝혔다. 이 시장은 “지하 4층 이상의 공사는 특수공법이나 이중 차수 적용 등 안전한 지하층 공사를 위한 굴토 심의 제도를 도입하겠다”며 “강력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 철저히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시장은 “일산신도시 조성 때 흙을 매립한 백석동 등 연약지반 전체를 조사,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고양=전익진·김준영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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