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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단 1석도 못줄인 코미디…그뒤엔 유성엽 막판 몽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역구 250석과 253석의 차이는 뭘까.

[현장에서]

23일 ‘4 1 협의체(더불어민주당ㆍ바른미래당 당권파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 대안신당)’가 선거법 개정안 최종 합의를 내놓으면서 남긴 의문점이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 현행 유지▶연동형 비례대표 상한 30석▶연동률 50%▶석패율제 및 권역별 비례대표 포기가 이날 합의의 골자였다. 민주당이 지난주 내놓은 최종안에서 달라진 것은 지역구 의석수가 250석에서 253석으로 늘어난 게 전부였다. 이날 오후 기자 상대 설명회에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무슨 차이냐”는 질문에 “군소정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만 했다. “우리 책임은 아니다”는 말로 들렸다.

군소 4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선거법 일괄상정 등 합의안을 발표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군소 4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선거법 일괄상정 등 합의안을 발표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취재 결과 '의문의 1승'은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이 거두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유 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막판까지 석패율제를 주장하던 유 위원장은 이날 군소 4당 대표 합의에 앞서 열린 대안신당 내부 회의에서 “석패율제를 과감히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

정읍시장 출신인 유 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인 전북 정읍-고창과 인접해 있는 전북 김제-부안 선거구가 정읍에 통폐합되는 걸 걱정해왔다고 한다. 김제-부안 인구는 인구 기준일(올 1월 31일) 현재 13만9470명으로 20대 총선에 적용된 하한 기준 14만 명 밑으로 떨어져 있다. 게다가 의석수가 줄어 인구 하한이 높아지면 정읍-고창 지역구와 합쳐지는 김제-부안의 범위가 넓어져 유 대표의 당선 가능성은 위협받게 된다. 이날 ‘4+1’ 합의는 지난 주말 사이 이같은 유 위원장의 뜻이 각 당에 수용된 결과라는 평가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오른쪽)과 박주민 최고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선거법 및 검찰개혁법안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오른쪽)과 박주민 최고위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선거법 및 검찰개혁법안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투쟁 끝에 이뤄진 5당 협의(12월 15일)와 4월 패스트트랙 대충돌을 거쳐 본회의에 올라오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미 누더기가 됐다. 유 위원장의 몽니는 누더기에 마지막 조각을 덧댄 셈이다.

지난 4월 30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5당 협의로 ‘225(지역구) 대 75(비례) 안’(심상정 발의)을 패스트트랙에 올렸지만, 민주당은 협상 초기부터 “의원 정수 확대는 없다”(김종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고 못 박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폭을 제한했다. 지역구 선거에서 완주해 정당득표율을 견인한 명망가들을 부활시킬 출구가 필요했던 정의당은 석패율제를 끝까지 고집했지만, 민주당 반발에 속수무책이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심상정 안을 그대로 상정해 부결되도록 방치하자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나왔다”며 “검찰 개혁 법안은 미뤘다가 4월에 처리하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강공 드라이브에 군소 야당은 무기력했다.

그 결과 정당지지율에 따른 비례성을 높여 연합정치가 가능한 다당제 구조를 만들겠다는 명분은 거세된 채 복잡한 선거수학과 '밥그릇 싸움'만 이어졌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17석은 현행대로 뽑고 고작 나머지 30석에 ‘연동률'을 적용하려고 이렇게 1년간 진흙탕 싸움을 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제1야당을 ‘게임의 룰’에서 배제하면서 말이다. 그간 패스트트랙 고소ㆍ고발사태로 한국 정치판이 치른 비용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힘들다. 또한 한국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처한다고 하니, 개편안은 개악이 될지도 모른다.

이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선거 개혁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고 너무나 미흡한 안을 국민께 내놓게 돼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과정에서 나온 정치인 발언 중 가장 공감 가는 말"이라는 평가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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