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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초반 두 점 치수 잘 살려…한돌 허찌른 78수로 실수 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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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목진석

목진석

두 점을 깐 이세돌 9단은 세 귀를 차지하며 안정적으로 출발했다. 초반 포석은 차분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두 점의 치수를 잘 살려 나간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포석을 마친 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9단은 우변(기보에서는 좌변) 자신의 돌을 돌보는 대신 상변(기보에선 하변)에 집을 마련했다. 집에 민감한 인공지능(AI)을 상대로 초반부터 실리에서 앞서가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가대표 감독 목진석 9단 관전평 #집에 민감한 AI 상대로 실리 챙겨 #한돌, 돌 잡히는 ‘장문’ 파악 못해

접바둑의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 AI 한돌은 우변 흑돌을 공격하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만일 흑돌이 죽거나, 살더라도 큰 손해를 본다면 형세가 단번에 뒤집힐 수 있었다. 백 63으로 모자를 씌우며 공격한 수가 위협적이었다. 흑 대마를 공격하면서 한돌은 조금씩 이 9단을 따라잡아 갔다.

흑 대마가 백의 포위망에 걸려든 위험한 상황에서 이 9단은 씌우는 맥점인 78수를 뒀다. 이후 82를 선수하고, 84로 끊자 한돌은 자신의 돌이 잡히는 ‘장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격하던 요석 석 점이 죽고 말았다. 여기서 승부는 사실상 끝났다. 그 순간 30%대까지 치솟았던 한돌의 승률은 3%대로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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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수는 한돌의 예상에는 없던 수였던 것 같다.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는 다른 AI 프로그램들도 그 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AI의 강점은 안정적으로 정확한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78수 이후의 흐름은 한돌의 실수가 아니라 이 9단이 한돌의 실수를 유도한 묘수를 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사실 이번 이 9단의 상황은 알파고 때보다 어려웠다. 최근 실전경험은 부족했고, 랭킹도 내려갔다. 반면 한돌은 앞서 국내 프로기사 현역기사 1~5위를 모두 꺾은 바 있다. 접바둑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프로기사가 한돌의 승리를 점쳤던 이유다. 이번 이 9단의 승리로 19일 열릴 2국은 예상이 힘들어졌다. 2국은 호선이라 한돌의 승리를 예측하는 쪽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알파고와의 4국 때도 예상을 뒤엎고 이 9단이 승리하지 않았는가?

정리=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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