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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불계승…AI는 불완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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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8일 은퇴대국으로 열린 AI ‘한돌’과의 대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한돌은 NHN이 2017년 선보인 바둑 AI 프로그램이다. 한국 바둑의 간판으로 활동했던 이세돌 9단은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24년4개월간의 프로기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 9단이 불계승을 거둔 후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세돌 9단이 18일 은퇴대국으로 열린 AI ‘한돌’과의 대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한돌은 NHN이 2017년 선보인 바둑 AI 프로그램이다. 한국 바둑의 간판으로 활동했던 이세돌 9단은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24년4개월간의 프로기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 9단이 불계승을 거둔 후 서울 강남구 바디프랜드 사옥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92수 흑 불계승. 18일 국산 바둑 인공지능(AI) ‘한돌’을 이긴 이세돌 9단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시간은 없겠지만 2·3국에선 한돌이 준비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한돌의 분발을 촉구하는 대목에선 자신감도 묻어났다. 좌중엔 웃음이 터졌다. 18일 서울 강남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이세돌 은퇴 대국 1국에서 이 9단이 NHN의 ‘한돌’을 92수 만에 꺾었다. 단명국(100수 이내에 상대의 기권으로 승패가 나는 대국)이었다. 2016년 3월 ‘호선(동등한 조건의 대국)’으로 대결했던 구글의 AI ‘알파고’와 달리 이날 대국은 이세돌이 2점을 먼저 두고 한돌에 덤 7집 반을 주는 ‘2점 접바둑’ 형태로 진행됐다. 인간이 AI를 극복하긴 힘들다는 점에서다.

알파고보다 센 국산 한돌 상대 #은퇴대국 1국 92수 만에 완승 #예상 밖 승리 뒤 “한돌, 준비 더 하라” #한돌, 접바둑 학습 두 달밖에 안돼 #호선보다 승률 훨씬 낮은 8%선 #이세돌 “78수 예상 못한 건 의외 #알파고 때와 달리 정상적인 수”

이번에도 ‘78수’에서 일이 터졌다. 한돌이 자신의 돌이 잡히는 ‘장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백돌 3개를 잡힌 것이다. 3년 전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세돌에게 1승을 안겨줬던 ‘신의 한 수’도 78수였다.

이창율 NHN 게임AI팀장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한돌이 이 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78수부터 승률이 급격히 내려갔다”고 전했다. 이에 이세돌은 “알파고 때 78수가 정상적이지 않은 수였다면 이번 78수는 프로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였다. 한돌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의외”라고 말했다.

국내 바둑 톱5 다 꺾은 한돌, 이세돌 ‘78수 매직’에 당했다

이세돌 9단이 18일 NHN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한돌’과 펼친 은퇴대국 1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이세돌 9단이 18일 NHN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한돌’과 펼친 은퇴대국 1국에서 돌을 놓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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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전문가는 대국 전까지 한돌의 우세를 예상했다. 이세돌의 승리가 확정되자 “예상 밖의 결과”라며 현장이 떠들썩해진 이유다. 현장 해설을 맡았던 김만수 8단은 “이 9단이 공격형인 평소 스타일을 버리고 수비 전략을 취한 것이 승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세돌은 “대국을 앞두고 열흘간 먹고 자는 시간 외엔 계속 바둑만 뒀다. 2점 접바둑에서 수비적으로 두는 경우는 드물지만 AI를 상대로는 이 편이 승률이 높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실 호선만 학습해온 한돌에게도 이번 대국은 도전이었다. 한돌이 접바둑을 준비한 기간은 두 달 정도다. NHN에 따르면 호선의 승률은 54~55%, 2점 접바둑의 승률은 8% 정도다. 박근한 NHN 기술연구센터장은 “이세돌 은퇴 대국을 제안받았을 당시 한돌은 접바둑을 해본 적이 없어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이 9단을 떠나보내는 바둑계와 국민의 마음을 담아 응했다”고 답했다. 유창혁 9단은 “한돌은 호선으로는 많은 대국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정확한 바둑을 둔다”며 “그런데 접바둑에서는 불안한 모습이 있었다. 한돌 수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오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vs 한돌

이세돌 vs 한돌

일각에서는 한돌이 이세돌의 78수 이후 실수를 연달아 범했다는 점에서 버그(프로그램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NHN 관계자는 “버그는 아니고 이세돌이 대처를 잘했다는 것이 개발진의 평가”라며 “이세돌이 ‘신의 한 수’를 뒀다”고 말했다. 유력한 패인은 그간 호선만을 둬오던 한돌이 2점을 먼저 깔아주는 이번 대국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돌은 두 달여 동안 프로기사들과 연습하며 학습 데이터를 쌓았다. 이에 개발진 내부에서는 3점은 몰라도 2점 접바둑은 어느 정도 기력이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첫 실전 대국에서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쌓지 못한 AI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 팀장은 “머신러닝(기계학습)이라는 게 학습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능력이 올라가는데 이번엔 학습량이 많지 않았다”며 “2점 접바둑을 학습시키면서 프로 기사들과 테스트를 했는데 결과가 많이 달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한돌은 NHN이 알파고를 계기로 개발을 시작해 2017년 12월 국내 게임업계에선 처음 선보인 토종 바둑 AI다. 1999년부터 NHN이 쌓은 ‘한게임 바둑’의 데이터를 학습했다. 여러 예측 모델을 동시에 돌리는 ‘앙상블 추론’ 분석 기법을 쓴다. 사람으로 치면 여럿이 동시에 다음 수를 의논하는 형태다. 대국 실력점수인 이엘오(ELO) 점수 기준 한돌의 기력은 4500점 이상이다. 이는 이세돌과 대국했던 알파고 리, 2017년 중국의 커제 9단과 대결했던 알파고 마스터보다 높은 점수다. 통상 최정상급 인간 프로기사가 3600점대 후반이다. 한돌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신민준· 이동훈·김지석·박정환·신진서 9단 등 국내 ‘톱5’ 프로기사들과의 릴레이 대국을 펼쳐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이세돌은 지난달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24년간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세돌의 은퇴 대국은 19일 같은 곳에서 2국이, 오는 21일 이세돌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3국이 열린다. 19일 열리는 2국에서는 호선으로 대결한다.

김정민·하선영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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