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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갑질 200억 과징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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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모습. [연합뉴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모습. [연합뉴스]

조선업에 불황의 칼바람이 몰아친 2015년 12월. 현대중공업은 선박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 하도급업체 대표를 불러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요지는 “업황이 나쁘니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단가를 10% 내려달라”는 것.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을’인 하도급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단가를 내려 이듬해 현대중공업에 부품을 납품했다.

납품사에 “단가 안 내리면 일 안 줘” #일 먼저 시키고 1년 뒤 계약서 발급 #중간 지주사는 조사자료 은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맡기면서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하거나 사전에 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과징금 208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같은 행위로 현대중공업그룹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에도 시정 명령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 현장조사를 방해한 행위에 대해서도 과태료 1억2500만원을 부과받았다.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은 광범위하게, 장기적으로 진행됐다. 현대중공업은 2014~2018년 사내 하도급업체 207곳에 작업 4만8529건을 맡기면서 작업을 시작한 뒤에야 계약서를 발급했다. 최대 1년이 지난 뒤 계약서를 준 경우도 있었다. 박재걸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하도급 업체가 구체적인 작업 내용과 대금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선 작업을 시작하도록 한 뒤 사후에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으라고 강요했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업이 어려웠던 2016년 상반기엔 일률적으로 ‘10% 단가 인하’를 요청했다.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일부 업체엔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의 대금을 강요했다. 이런 식으로 48개 하도급업체에 9만 건을 발주해 하도급 대금 51억원을 깎았다. 하도급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내려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조직적인 조사 방해 행위도 저질렀다. 지난해 10월 공정위 현장조사 당시 한국조선해양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조사 대상 부서 저장장치(HDD) 273개와 컴퓨터 101대를 교체했다. 중요 자료를 외장 하드에 은닉하고, 공정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거부한 뒤 자료를 폐기하기도 했다. 박재걸 과장은 “이번 조치로 ‘선시공 후계약’이 만연한 조선업계 불법 거래 관행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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