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딘가 있을 수호신을 믿습니다, 내년에도 부탁해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9)  

"난 너와 가까이 마주 앉아 이렇게 떠드는 것보다 멀리서 네 명성을 듣는 게 좋아." 영화 '시네마천국' 중에서. [중앙포토]

"난 너와 가까이 마주 앉아 이렇게 떠드는 것보다 멀리서 네 명성을 듣는 게 좋아." 영화 '시네마천국' 중에서. [중앙포토]

영화 ‘시네마천국’을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난 너와 가까이 마주 앉아 이렇게 떠드는 것보다 멀리서 네 명성을 듣는 게 좋아.”
아들이 잘되길 바라는 가난한 부모의 마음이 그 말속에 있어서 늘 기억하는 대사다.

작년 이맘때엔 호주에 사는 아들이 새로운 사업(조경)을 시작한다 해서 축하차 다녀왔다. 호주라는 나라는 12월이면 여름의 시작이라 더워도 너무 덥다. 가끔은 저녁 해거름에 아이들을 데리고 길 건너 놀이터를 다녀오곤 했다. 그곳은 동네마다 녹지공원이 있고 놀이터 크기도 우리나라의 작은 축구장만 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너무 좋았다.

어느 날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며 놀고 아들이랑 나는 운동 삼아 운동장을 돌고 있으려니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보니 파란색 자동차가 놀이터 근처에 표시된 어린이 보호구역 서행표시판을 들이박아 뿌리째 뽑아놓고 주차된 차까지 슬쩍 치고 달아났다. 아들이 번개같이 뺑소니차를 따라 달렸다. 덩치에 비해 엄청 빨랐다. 헉헉거리며 돌아온 아들의 휴대폰엔 차의 넘버가 찍힌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러고는 경찰서에 신고했다. 요즘 휴대폰은 정말 좋다. 차 넘버만 알면 차 주인과 차종을 다 알아낼 수 있다.

'쾅~'하는 소리에 놀라서 보니 파란색 자동차가 놀이터 근처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서행표지판을 들이 박고 주차된 차까지 슬쩍 치고 달아났다. [사진 pixabay]

'쾅~'하는 소리에 놀라서 보니 파란색 자동차가 놀이터 근처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서행표지판을 들이 박고 주차된 차까지 슬쩍 치고 달아났다. [사진 pixabay]

잠시 후 동네 사람들이 큰 소리에 놀라 하나둘 아이들을 품에 안고 나왔다. 아들과 주차된 차의 주인들이 차의 상태를 확인하며 긴 대화를 했다.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아들의 영어 실력은 좋은 것 같았다. 이참에 아들은 명함을 주고 받으며 자신이 올해 시작하는 일에 관해 소개도 했단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 놀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뺑소니차 넘버를 찍어 신고한 내가 이웃이라 자랑스럽데. 내 소개를 하니 한 분도 그 일을 크게 하는 사업가시래요.”

호주를 떠나던 날 아들 내외는 빅토리아주에서 제일 맛있다는 한국인 식당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을 대접했다. 식사하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기분이 엄청 업 되어 흥분 상태다. 이별의 순간에 울적한 시간을 잠시라도 웃게 해주신 그분은, 놀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같은 일을 하신다는 분이셨다. 아들에게 첫 개업 선물이라며 큰 일거리를 준 것이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지켜봐 주는 수호신이 꼭 있다"고 친정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사진 pixabay]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지켜봐 주는 수호신이 꼭 있다"고 친정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사진 pixabay]

식사하고 아이들과는 거기서 작별하고 아들이 공항을 바래다주며 말했다. “덩치만 큰 내가 처음 타국에 나왔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몰라. 왜 우리 부모는 가난해서 날 이리 힘들게 하는가 원망도 많이 했지. 그래도 젊음이라는 무기 하나로 밤낮없이 뛰었던 시절이 가장 빛나던 시절인 것 같아. 부모님이 군 제대하자마자 내 등을 떠민 건 정말 찬스였어. 멜버른 공항 옆에 저기 보이는 곳이 신문사랍니다. 저녁에 청소 일을 하고 들어가 잠시 눈 붙이다가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이곳을 와서 신문을 싣고 보급소에 새벽 배달을 하고 빵 한 조각 물고 학교에 가곤 했지요. 때론 돌아가던 기계가 다 멈추고 긴급속보를 다시 찍어내던 일촌광음의 뉴스들. 내 인생에 펼쳐질 또 다른 새판을 이번에 보셨으니 다행입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낯선 나라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취업했을 때도, 내게 도움을 주는 이웃이 늘 있었어요. 정말이지 내 주위를 맴도는 수호신이 진짜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지켜봐 주는 수호신이 꼭 있다”고 친정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12월이 다 지나간다. 새해의 계획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나도 주위에서 격려해주는 많은 수호신의 도움으로 올 한해 참 열정적으로 보냈다. 내년에도 수호신을 믿고 열심히 또 달려 볼 것이다. 아들 내외와 새해의 멋진 계획과 한해를 감사해 하는 통화를 오래도록 했다. 금일봉을 보냈다는 톱뉴스와 함께. (하하)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