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오류" vs "체모 조작"···8차 이춘재 사건 검경 갈등 격화

중앙일보

입력 2019.12.17 20:08

업데이트 2019.12.17 21:09

'8차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52)씨를 지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잘못된 감정 결과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국과수 감정에 오류가 있었다"는 경찰 주장을 검찰이 "오류가 아닌 조작"이라고 재반박했다.
두 기관 모두 "수사권 조정과 8차 사건은 관계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반박과 재반박을 거치면서 검경의 갈등이 심화하는 형국이다.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20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NGO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20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NGO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 수사본부는 17일 브리핑을 열고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국과수 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체모 10점을 가지고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체모 속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조사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중성자 방사화 분석)'를 하기로 하고 원자력연구원에 시료 분석을 요청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용의자의 체모 2점을 가지고 5차례 걸쳐 분석했다. 1차 결과에선 알루미늄(AI) 수치가 166으로 나왔지만 2·3·4차 조사에선 알루미늄 수치가 239로 나오는 등 원소별 수치가 달랐다.

경찰 "분석 결과를 조합·첨삭·가공·배제해 오류"

경찰에 따르면 국과수는 원자력연구원에서 받은 감정 결과를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1·2차 조사 중심으로 경찰이 용의자로 추정한 이들의 체모를 대조했다. 원자력연구원의 시료별 분석 결과를 임의로 최댓값 또는 최솟값을 사용하거나 범위를 초과하는 수치를 사용해 감정하기도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뉴스1]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뉴스1]

원자력연구원은 윤씨의 체모로도 중성자 방사화 분석을 2차례 실시했다. 결과는 다르게 나왔는데 국과수는 원자력연구원이 최근에 한 2차 조사결과가 아닌 국과수가 분석한 수치와 유사한 1차 조사 결과를 적용해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장(2부장)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모발에 의한 개인 식별은 추론 방법에 따라 오류 가능성이 커 과학적 증거방법으로 신뢰성이 낮다"면서 "감정인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법 과학 분야에 도입해 감정하는 과정에서 시료 분석 결괏값을 인위적으로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조작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인데 국과수 감정서는 감정인이 대체로 수치를 취사선택에 조합한 것이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검찰 "일반인 체모를 범인인 것으로 조작" 

그러나 검찰은 즉각 경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1차 분석을 제외한 2∼5차 분석에 쓰인 체모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 전 장비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Standard) 시료일 뿐,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아닌데 일반인의 체모를 범인인 것처럼 둔갑시켰으니 '조작'이라는 거다.
수원지검은 이날 낸 의견문에서 "경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범죄현장에서 수거하지 않은 일반인의 체모를 감정한 결과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의 감정 결과인 것처럼 허위로 감정서를 작성하고 나아가 감정 결과 수치도 가공을 했다"고 지적했다.

수원고등검찰청 수원지방검찰청.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수원고등검찰청 수원지방검찰청.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검찰은 "전문가들도 '당시 다른 용의자에 대한 국과수 감정서는 범행현장에서 수거한 체모 감정 결과를 기재했지만 윤씨의 감정서만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가 아닌 엉뚱한 일반인들의 체모를 범죄현장에서 수거한 체모인 것처럼 감정서를 허위로 기재해 넣는 방법으로 조작했다'고 했다"며 "감정서 조작 과정 등은 재심의견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면서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원자력연구원의 5차례 분석 중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 분석은 1차만 현장 용의자의 시료였고 나머지 2~5차 검사 시료는 장비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표준(Standard) 시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당시 표준시료로 명시된 것은 원자력연구원에서 분석을 담당했다. 국과수 관계자를 조사했을 때 '표준시료로 명시한 것은 현장에서 채취한 체모이고, 용의자들의 시료는 샘플로 명시해 분석 의뢰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검찰이 주장한 윤씨와 용의자들의 대조 시료(현장체모 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내용도 원자력연구원에 확인한 결과 윤씨와 용의자 대조 시료 모두 동일한 분석 결괏값으로 대조, 감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2일 국가기록원으로부터 8차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 10점 중 2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 내 '나라기록관' 임시 서고에 보관 중인 사건 기록 첨부물 중 1매에 테이프로 붙여진 상태로 보관됐다고 한다. 경찰은 국가기록원이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한번 이관받은 문서에 대해서는 반출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견지함에 따라 검찰과 협의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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