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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재판이 되레 독? 안인득 이어 전주 방화범도 25년 중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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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전주지법에서 여인숙에 불을 질러 투숙객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모(62)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24일 전주지법에서 여인숙에 불을 질러 투숙객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모(62)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범 안인득(42)에 이어 전주 여인숙에 불을 질러 폐지를 팔아 생활하던 투숙객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도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조현병을 앓아 온 안인득은 "심신 미약"을, 전주 여인숙 방화범은 "직접 증거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양쪽 배심원단과 재판부는 두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은 형량이 낮게 나오기를 기대하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줄줄이 중형이 나왔다.

60대 남성 "직접 증거 없다" 무죄 주장 #검찰 "당시 골목 지나간 유일한 인물" #CCTV·그을음 묻은 운동화 등도 증거 #배심원 다수 '유죄'…법원, 중형 선고 #安 1심 배심원 9명 중 8명 사형 의견

전주지법 형사1부(부장 고승환)는 17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모(62)씨에 대해 9명 중 8명이 유죄 의견을 낸 배심원 평결을 반영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8월 19일 오전 3시 47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여인숙에 불을 질러 김모(83·여)씨 등 70~80대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들은 여인숙에 살며 폐지·고철 등을 팔아 생계를 꾸려온 노인들이었다. 매달 12만원을 내고 '달방' 형태로 2평(6.6㎡) 방에서 살았다. 김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불을 지른 적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다가 1심 첫 공판 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지난 8월 19일 오전 3시 47분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19일 오전 3시 47분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과 김씨 측은 재판 내내 "방화범으로 볼 간접 증거가 충분하다" "직접 증거가 없는데도 방화범으로 모는 건 억울하다"며 팽팽히 맞섰다.

김씨 측 변호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여인숙 구조물이 무너져 발화 지점과 발화 원인에 대한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냈는데도 검찰이 사건 발생 시간대에 여인숙 앞 골목을 지나간 사람이 피고인밖에 없다는 이유로 방화범으로 몬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골목에 거주하는 모두가 화재 현장에 접근했지만, 이들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고인 운동화와 자전거에 남은 그을음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묻을 수 있는 흔적"이라고 했다.

이에 검찰은 이번 화재가 왜 방화 사건이고, 당시 여인숙 골목을 지나간 '자전거 탄 남자(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검찰은 "'여인숙 내 2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주민 증언과 '누전 등으로 인한 실화 가능성은 없다'는 화재 감식 결과를 종합하면 방화로 보기 충분하다"며 단순 화재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당시 자전거를 타고 있던 피고인은 화재 신고 직전 여인숙 골목을 통행한 유일한 인물인 데다 1분 20초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85m 길이 골목에 6분가량 머물렀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진술을 수차례 바꾼 점도 부각했다. 검찰에 따르면 수사 초기 김씨는 "여인숙에 간 적도 없다"고 부인하다가 경찰이 본인이 찍힌 폐쇄회로TV(CCTV)를 들이댄 뒤에야 인정했다. 김씨 자전거와 운동화 등에서는 그을음이 발견됐다.

검찰은 김씨가 자전거를 자신이 사는 아파트 동이 아닌 다른 동에 숨긴 점, 범행 후 새 옷을 사 입은 점, 과거 2차례 방화 전력이 있는 점 등을 들며 "이런 정황은 이번 사건의 실체를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약 33년간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화로만 6년을 복역했다. 성폭력 전과도 있다. 결혼은 안 했고, 조카 명의 집에서 살림살이도 없이 혼자 살았다. 일정한 직업은 없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달 50여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재판부는 검찰 주장과 배심원의 평결을 인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배심원은 오늘 재판부가 받아들 수 있는 수준의 평결을 내렸다"며 "투숙객 3명을 사망하게 한 범죄는 죄질이 매우 나쁘고, 피고인은 동종 범죄로 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숨진 이들의 피해는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이 어렵다. 유족도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원하는 등 피고인의 연령과 성향, 범행 수단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지난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입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안인득(42). [연합뉴스]

지난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입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안인득(42). [연합뉴스]

앞서 안인득도 지난달 27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들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변호인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안인득의 과거 병력과 정신 감정 결과를 들어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배심원 9명 중 8명이 사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를 반영해 사형을 선고했다.

안인득은 지난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입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해 살인 및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 및 방화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재판부는 "범행 경위와 피고인의 행동 등을 종합하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미약한 상태라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안인득은 최후 변론에서 "조현병 환자라면서 과대망상이라고 하고, 정신 이상자로 내몰아 버리고 그런 부분들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재판장이 사형 주문을 읽자 이에 반발해 큰소리를 지르다 교도관에게 끌려나갔다. 안인득은 항소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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