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치혁의 한반도평화워치

대통령이 유턴해야 지금의 위기 극복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반도 위기 속 지도자의 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덩샤오핑 전 중국 최고지도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 상황을 맞아 기존 노선에서 유턴해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덩샤오핑 전 중국 최고지도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 상황을 맞아 기존 노선에서 유턴해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는 지정학적 패러다임 전환 시기에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역사의 판을 바꾸려는 게임 체인저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 옆에 김정은과 아베도 서성거린다. 세상이 다 바뀌는데 우리만 못 보고 있다.

박정희·덩샤오핑, 기존 노선에서 #유턴함으로써 국가 위기를 극복 #문 대통령도 지정학적 현실 직시해 #국가 생존·번영의 길 찾아 나서야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역사와 자기가 겪은 사실들을 기반으로 현시점을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이 똑똑하게 보고 대처하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흐름에 역류하지 말고 함께 가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국제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동북아는 세계열강의 정치가 각축하는 공간”이라며 “한국 지도자는 이런 공간의 동적 권력관계를 냉정히 통찰해 생존과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임에도 지금 한국에는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인류 역사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사울은 기독교인들을 말살해야 한다는 열정과 신념으로 행동대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다메섹(다마스쿠스) 노상에서 쓰러져 실명하였으나 이때 진실을 보고 듣고, 가던 길을 유턴하여 순교자가 되면서 오늘날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성자가 되었다.

박정희는 일본 강점기에 만주군 대위로서 해방 후 한국 군대 내의 북한 공산당 조직책이었으나 현실을 보고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고 유턴하여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산업국가 건설의 길을 택했다. 이에 분노한 북한이 1968년 북한군 특수부대원 김신조 등을 남파해 박정희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박정희는 지금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기적의 길을 열고 틀을 완성하였다. 정의 앞에서 유턴하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용감하고 위대한 것이다.

덩샤오핑, 간부들에게 박정희 전기 읽게 해

중국은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통치 아래에서 굶주렸다. 덩샤오핑은 박정희가 이룬 현실을 직시했다. 그는 1988년 최측근 참모를 한국에 보내 최종 조사 보고를 받아보고 한국과의 수교를 결심하였다. 또 박정희 전기를 만들어 모든 고위직 간부 관료들에게 4회 이상 읽게 했다.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한국과의 수교 일정을 통보받은 나는 즉각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덩샤오핑은 평생을 걸어온 공산주의 노선을 유턴하여 개혁 개방과 자유시장 경제를 택했다.

덩샤오핑은 공산주의는 지금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오늘의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2강(G2)이 됐다. 이것도 위대한 지도자가 현실을 직시하고 유턴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는 다만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한 채 서거했다.

김일성도 덩샤오핑의 뒤를 따르려 했다. 이것은 내가 직접 겪은 사실이다. 덩샤오핑은 94년 장쩌민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을 설득했다.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택하라고 권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했다. 김일성이 이를 확실히 받아들이기로 한 직후 덩샤오핑은 나에게 이 내용을 전해주었고 나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일성은 94년 7월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일자까지 확정했지만, 예기치 못한 돌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밤 김일성은 개혁개방을 선언하는 공동 발표문을 쓰고 있었다. 그는 펜을 잡은 채 영면했다.

그 후 2000년 6월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나는 남북경협위원장 자격으로 수행했다. 때는 한참 두 정상이 합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나와 마주 앉은 북측 실무 책임자는 나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놀랍게도 내가 알고 있던 통일 방안이 아니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나이가 많고 지금 당장 남북 통일사업을 결행할 의사가 없으니 젊고 믿을 수 있는 다음 대통령을 세워서 임기 중에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자고 했다. 나는 즉각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라서 자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기 때문에 북한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남한 정치에 개입하려 하면 남북이 다시 대립해 평화통일이 더 멀어진다고 답변하고 일어섰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남북 평화회담을 추진하고 있었다.

다음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하여 북한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취임 후 현실에 직면해 북한 기대와는 달리 유턴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새 시대 흐름 따라 전략적 유턴할 때

문재인대통령

문재인대통령

지금은 어떠한가.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이전 나치 정권의 히틀러에게 속은 영국 총리 체임벌린을 기억하자. 당시 프랑스가 호언장담했다 나치 침략에 어이없이 무너진 마지노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전쟁을 막을 대비를 못 한 자는 전쟁을 일으킨 자와 그 책임이 같다.

미국은 북한의 유턴을 바라지만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 오히려 김정은은 판을 뒤집으려 한다.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협상하여 한반도에서 미군을 밀어내면 남한의 종북세력과 함께 연방제를 구성하여 공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고 트럼프의 대선 기간을 기회로 밀어붙이고 있다.

어느 시대나 역사를 역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히틀러는 자기 소신에 빠져 수천만 명을 희생시키고 자기도 죽는 비극을 연출했다.

레닌도 같고 일본 제국주의도 같았다. 김원봉은 진정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자기 소신에 빠져 나라를 배신하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희생시키고 자기도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지금은 누가 역행하고 있는가.

시진핑은 덩샤오핑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다만 홍콩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선거로 처방한 것에 기대를 걸어본다.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 어떻게 이뤄낸 오늘의 중국인가. 부디 역사를 역행하지 않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한·아세안 정상회의 행사에서 “부산은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이라며 “우리의 오래된 꿈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 국가로, 양쪽의 장점을 흡수하고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유보와 함께 유턴의 신호이길 바란다. 중국의 반발이 매우 크겠지만 이겨내야 한다. 중국은 4000여년 역사상 330회 이상 우리나라를 침범했다.

최근 방한한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오만한 언동을 보고 구한 말 대원군과 모화(慕華, 중국의 문물이나 사상을 우러러 사모함)사상이 떠올랐다. 덩샤오핑이 그리워진다. 역사는 왜 뱅뱅 돌면서 가는지.

한반도는 지경학적 전략으로 지정학적 위기에서 벗어나야 생존·번영·평화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새 시대 흐름에 따라 전략적 유턴을 할 때다.

새로운 눈을 뜨고 유턴해야

나는 2008년 한반도가 글로벌 시대의 큰 가치를 창출하는 회전의 허브가 되는 유라시아 통합 프로젝트(United Eurasia Integration Project)에 중국의 참여를 권했다. 그러나 수년 후 글로벌화를 역행하는 중국 중심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신 실크로드 전략)가 나왔다.

우리는 중국의 전략적 구상인 일대일로와 윈-윈 할 수 있는 유라시아 라인을 만들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연결하여 대립· 대결이 아닌 협력·번영·평화의 새 세계를 전개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하나의 유라시아’는 유라시아 대륙과 대서양·태평양을 이어 미국에 연결하고 회전을 가속하여 시간과 공간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는 글로벌 윈-윈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새로운 눈을 뜨고 유턴하는 생명의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유턴은 배신과 다르다. 자유와 정의를 발견하고 용감하게 순종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택하는 길이다. 분열과 분쟁은 죽는 길이다. 다 같이 죽는 길로 가지 말고 다 같이 사는 길로 가자. 경제는 정직하다. 정직하면 앞길이 보인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실체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살리려면 종북파·주사파는 물론, 우리 모두가 유턴해야 산다. 시간이 없다.

장치혁 전 고합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