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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과 싸웠던 ‘인플레 파이터’…볼커 전 Fed 의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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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9일 사망한 폴 볼커(오른쪽)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7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사망한 폴 볼커(오른쪽)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7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통령님, 이것만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저를 임명한다면 저 친구(전임자)보다 긴축적인 통화정책(금리인상)을 선호할 겁니다.”

80년대 기준금리 연 20%까지 올려 #미국 물가 잡고 장기호황 이끌어 #글로벌 금융위기 뒤 볼커룰 제정 #카터 “키가 큰 것만큼 고집이 셌다”

1979년 8월 미국 백악관의 지미 카터 대통령 집무실.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신임 의장 후보였던 폴 볼커는 카터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볼커는 금리인상의 부작용으로 단기적으로 소비가 침체하고 실업률은 치솟더라도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번영을 위해선 인플레를 잡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볼커가 Fed 의장에 취임할 당시 연간 두 자릿수가 넘었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결국 1983년이 되자 4% 밑으로 떨어졌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던 볼커 전 Fed 의장이 지난 8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92세. 유족은 구체적인 병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볼커는 지난해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전 볼커를 Fed 의장으로 발탁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성명에서 “폴은 키가 큰 것만큼이나 고집이 셌다”며 “Fed 의장으로서 그의 정책은 비록 정치적으로 값비싼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올바른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1927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볼커 전 의장은 프린스턴대를 나와 하버드대 대학원, 런던정경대(LSE) 등에서 공부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 재무부 관료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Fed 의장이 된 볼커는 8년간 두 명의 대통령(카터와 로널드 레이건)과 일하며 기준금리를 최고 연 20%대까지 끌어올렸다. 한때 레이건 대통령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고히 지키고 장기 호황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볼커의 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19년간 Fed 의장으로 재직하며 미국 경제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호황으로 이끌었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볼커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더라도 경제적으로 필요한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몸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볼커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명으로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을 맡아 ‘볼커룰’제정에도 앞장섰다.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위험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 그 여파가 경제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미 의회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2015년 발효된 볼커룰은 금융규제 역사에서 중대한 이정표로 간주된다.

주정완 경제 에디터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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