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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그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이태원

중앙일보

입력

이태원    [사진 KT&G 상상마당]

이태원 [사진 KT&G 상상마당]

이태원은 해방 후 미군 기지가 들어선 뒤 외화벌이에 큰 역할을 한 곳이다. 용산 미8군 기지촌으로 성장한 이태원은 1970년대 당시 내국인은 출입 금지인 미군 대상의 클럽이 많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이태원>은 한국 경제 성장에 있어 특수한 공간이었던 이태원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유흥업에 종사한 삼숙, 나키, 영화 세 여성의 과거, 현재의 삶을 따라간다.

기지촌 이태원에서 살아온 여성들

클럽은 운영하는 삼숙은 이태원의 '역사'다.  [사진 KT&amp;G 상상마당]

클럽은 운영하는 삼숙은 이태원의 '역사'다. [사진 KT&G 상상마당]

삼숙은 이태원 유흥업계의 대장부 같은 사람이다. 40년 전 미군 대상 음악 클럽 '그랜드 올 아프리'를 사들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제 나이가 70대 후반이라 가게 일이 힘에 많이 부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5년 정도는 거뜬하다며 박력 넘치는 기세로 클럽을 이끌어간다.

삼숙은 한국 남자에 대한 원한이 많다. 그래서 한국 남자를 대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태원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며 가족들에게 돈을 아낌없이 썼다. 그건 나이 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네 번 했고, 마지막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키도 70년대 말부터 계속 이태원에서 살았다. 나키는 폭력이 심한 남편을 피해 집을 나왔고 이태원에서 새 삶의 터를 닦기 시작했다. 이태원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길거리에서 열댓 명의 남자들과 거침없이 싸우면서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클럽에서 일했고 지금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나키도 70세를 훌쩍 넘겼다.

70년대 말부터 이태원에 살아온 나키. [사진 KT&amp;G 상상마당]

70년대 말부터 이태원에 살아온 나키. [사진 KT&G 상상마당]

영화는 열아홉 살 때부터 이태원에서 놀기 시작했다. 그 후 미군 클럽에서 일하며 제법 큰돈을 벌었다. 클럽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하여 꿈에 그리던 미국 땅을 밟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돌아왔다. 20년 전 일이다. 지금은 남동생의 딸아이를 돌보며 빠듯하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이는 50대 후반이다. 영화는 딱 잘라 말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는 없었다고.

기록하여 기억하는 여성의 역사

<이태원>은 삼숙, 나키, 영화의 일상을 대체로 평행하게 보여주면서 때때로 교차시킨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모르는 사이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이태원이라는 곳에서 오랜 세월 뭇사람들의 오해와 멸시에 맞서 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이태원 상권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유입되면서 도시는 빠르게 이미지 변신을 했고,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삼숙, 나키, 영화 또한 세파의 격랑을 비껴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영화는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사진 KT&amp;G 상상마당]

영화는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사진 KT&G 상상마당]

<이태원>은 공간의 변화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의 삶을 기록함으로써 잊히거나 아예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여성들은 70, 80년대 기지촌 이태원에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며 국가 경제, 가족 경제에 큰 보탬이 됐지만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모진 혐오와 비난 속에서 낙인찍힌 채로 살았다. 강유가람 감독은 오래전부터 이태원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서서히 잊히는 존재가 된 이 여성들을 통해 공간의 역사, 그리고 여성의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이태원>은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우리는 매일매일>로 작품상을 수상한 강유가람 감독의 작품이다.

글 by 녹색방 영화를 좋아하는 북에디터


제목  이태원
감독  강유가람
출연  삼숙, 나키, 영화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평점  에디터 꿀잼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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