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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반대 물리치고 세종은 왜 한글로 불경 번역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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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은 ‘백성이 똑똑하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이 민하면(어리석으면) 나라가 가난해진다’고 했다. 법률서를 쉬운 한글로 펴낸 건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윤리서를 한글로 펴낸 건 효자가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자로 된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선우 스님)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운허기념사업회 언해불전연구소의 오윤희 소장과 선우 스님(언해불전연구소 사업단장), 현진 스님(언해불전연구소 연구위원), 권태영 실장을 만났다. 언해불전연구소는 올해 5월부터 5개년 계획으로 세종과 세조 때 언해(한글)로 발간한 불교 경전을 요즘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첫 결과물로 최근 ‘반야심경 언해본’ 번역 작업을 마쳤다. 그들에게 물었다. 15세기에 작성된 한글 불교 경전을 현대 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언해불전연구소의 (왼쪽부터) 선우 스님, 오윤희 소장, 현진 스님, 권태영 실장. 백성호 기자

언해불전연구소의 (왼쪽부터) 선우 스님, 오윤희 소장, 현진 스님, 권태영 실장. 백성호 기자

조선은 유교 국가다. 세종은 왜 굳이 한글로 불교 경전을 편찬했나.
“‘언해(諺解)’는 소통을 의미한다. 불전(불교 경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세종은 백성이 언해를 익히고, 언해로 된 부처님 가르침을 익혀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랬다. 세종은 유학과 과학, 언어는 물론이고 불교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다.”(선우 스님)
15세기 한글로 된 ‘반야심경 언해본’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불경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게 ‘반야경’이다. ‘금강경’도 반야경 안에 있는 금강부를 일컫는다. 이 방대한 반야경의 가르침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260자로 만든 게 반야심경이다. ‘반야심경 언해본’에는 불교의 핵심과 함께 우리 국어의 뿌리가 담겨 있다. 언해는 국어의 모근(母根)이다. 게다가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의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오윤희 소장)
오윤희 소장은 "반야심경 언해본'에는 15세기 국어의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오윤희 소장은 "반야심경 언해본'에는 15세기 국어의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산스크리트어로 된 인도의 불교 경전은 중국으로 건너갔다. 목숨을 걸고 인도로 갔던 현장 법사 등 중국의 수행자들 덕분이었다. 중국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모두 한자로 번역했다. 중국의 문화와 중국의 언어로 불교를 녹인 뒤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세종 역시 그걸 시도했다. 중국 글자로 된 불경이 아니라 조선의 언어와 조선의 문화가 녹아든 불교 경전을 펴내고자 했다. 그건 위에서부터 일어난 15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운동이기도 했다.

조선의 7대 왕 세조는 왕자 시절부터 세종의 곁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불서 편찬과 불경 간행을 도왔다. 왕위에 오른 세조는 유학자들의 강경한 반대를 물리치고 1461년 간경도감을 설치했다. 한자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기관이었다. 당시 간경도감 본사는 한양에 있었지만, 안동부와 개성부, 상주부와진주부, 전주부와남원부 등에도 설치된 전국적 조직이었다. 세조는 직접 간경도감 업무를 관장했다.

왕자 시절부터 부왕 세종을 도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언해불전 간행에 힘을 보탰던 세조의어진 초본. [중앙포토]

왕자 시절부터 부왕 세종을 도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언해불전 간행에 힘을 보탰던 세조의어진 초본. [중앙포토]

한자로 된 불경의 한글 번역 작업에는 신미 대사가 간여했나.
“그렇다. 세종과 세조에 걸쳐 신미 대사는 한자로 된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고려 나옹 선사의 스승은 지공 스님이었다. 나옹 선사의 제자가 무학 대사, 무학의 제자가 함허 스님, 함허의 제자가 신미 대사였다. 그런데 나옹의 스승이었던 지공 스님은 인도 사람이었다. 신미 대사의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것도 이 때문이라 본다.”(현진 스님)  

현진 스님은 2003년 인도에 가서 10년 동안 산스크리스트어를 공부했다. 국내에 돌아와서는 서울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를 공부하는 학당을 6년째 열고 있다.

조선 초기의 한글로 된 ‘반야심경’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
“물들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국어가 기록돼 있다. 가령 불교 용어인 ‘연기(緣起ㆍ모든 현상은 독립된 것이 아니라 관계된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뜻)’가 언해본에는 ‘붙어서 일어나다’라는 우리말로 기록돼 있다. ‘연기(緣起)’라는 말을 쓰면 또 한 번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붙어서 일어나다’라는 우리말을 쓰면 그냥 탁 들어온다.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요즘 ‘통섭’이란 말을 자주 쓰지 않나. ‘반야심경 언해본’에 그건 우리말로 ‘모도잡아’라고 표현돼 있다. 말만 들어도 감이 착착 오지 않나. 이런 게 ‘반야심경 언해본’의 매력이다.”(오윤희 소장)
언해불전연구소 상임이사 선우 스님은 "언해불전에는 국어의 모근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백성호 기자

언해불전연구소 상임이사 선우 스님은 "언해불전에는 국어의 모근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백성호 기자

현진 스님은 인도에서 10년간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학당을 열고 있다. 백성호 기자

현진 스님은 인도에서 10년간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다. 지금은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학당을 열고 있다. 백성호 기자

‘반야심경 언해본’에는 반야심경 원문 번역과 함께 주석과 해제에 대한 번역도 실려 있다. 오윤희 소장은 “‘언해불전’을 우리말로 익히고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언해불전’ 전산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반야심경 언해본’ 다음의 작업은 ‘금강경 언해본’이다. 15세기 번역된 언해불전 분량은 옛날 책으로 200~300권 분량이다. 일단 5년에 걸쳐 이걸 요즘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언해불전연구소는 운허기념사업회에 속해 있다. 운허(1892~1980) 스님은 ‘한글 불교 경전’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출가 전 청년 시절에는 항일무장독립운동에도 투신했다. 출가 후에는 교육 사업과 함께 한글 대장경 번역 사업에 주력했다. 6촌 간인 춘원 이광수가 친일변절자라는 비판과 아들의 죽음 속에서 괴로워할 때 ‘법화경’을 소개하며 불교에 발을 들이게 했다. 성철 스님도 생전에 “옛 조사는 원효 스님을 가장 존경하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운허 스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운허의 후학들이 언해불전을 현대 국어로 풀고 있다.

운허 스님

운허 스님

운허 스님은 '한글 불겨 경전'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방대한 분량의 '한글 대장경' 작업도 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앙포토]

운허 스님은 '한글 불겨 경전'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방대한 분량의 '한글 대장경' 작업도 그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앙포토]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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