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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공무견 견생역전…면사무소 ‘주무관’된 곶감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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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북 완주군 운주면사무소 직원들이 지난 9월 입양한 ‘곶감이’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 운주면사무소]

전북 완주군 운주면사무소 직원들이 지난 9월 입양한 ‘곶감이’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 운주면사무소]

흰색 암컷 진돗개가 마당에 한가로이 누워 있다. 앞발로 잡고 있던 테니스공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이빨로 연신 깨물며 장난을 친다.

태풍 링링 때 완주 운주면사무소에 #8개월령 흰색 암컷 진돗개 찾아와 #직원들이 돌보며 마스코트 변신 #유튜브서 지역 특산품 홍보 활약

전북 완주군 운주면사무소가 만든 ‘면사무소 곶감이’라는 유튜브 채널 영상에 나오는 ‘곶감이’의 모습이다. 태어난 지 8개월가량 된 곶감이는 운주면사무소가 지난 9월 입양한 유기견이다.

완주군은 3일 “완주의 명물(名物)이 된 곶감이의 일상을 알리면서 운주면과 완주군의 각종 축제 등을 홍보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떠돌이 유기견의 견생(犬生) 역전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1분28초짜리 영상(1탄)은 지난달 25일 유튜브에 올라온 뒤 3일 현재 조회 수가 3300회를 넘었다.

곶감이 후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1분56초짜리 2탄은 지난달 29일 게시 후 나흘 만에 조회 수 6200회를 기록했다. 2탄에는 오는 20~22일 운주면 대둔산 도립공원에서 열리는 ‘제6회 완주 곶감축제’도 소개하고 있다.

운주면사무소 측은 최근 곶감이에게 주무관 직급을 줬다. 명예직이지만 개가 주무관이 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주무관은 공무원 직급 중 6~9급을 말한다.

곶감이는 현재 운주면사무소 마당에 산다. ‘주무관 곶감이네집’이라는 문패가 달린 개집이 곶감이의 집이다. 떠돌이 개였던 곶감이는 어쩌다가 운주면사무소의 새 식구가 됐을까.

곶감이가 먹이를 먹는 모습. [사진 운주면사무소]

곶감이가 먹이를 먹는 모습. [사진 운주면사무소]

완주군에 따르면 곶감이는 몇 달 전부터 배고플 때마다 면사무소를 찾았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곶감이에게 음식을 챙겨 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곶감이는 지난 9월 8일 제13호 태풍 ‘링링’이 덮친 날 밤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면사무소에 나타났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상태였다. 비상근무를 서고 있던 면사무소 직원들은 초췌한 곶감이에게 여느 때처럼 음식을 주며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리고 회의를 열어 곶감이를 면사무소에서 직접 키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람의 돌봄 없이는 곶감이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강원양 운주면장은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요즘 시대에 ‘곶감이’라도 책임 있는 돌봄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양했다”고 말했다.

‘곶감이’라는 이름도 면사무소 직원들이 지어준 것이다. 운주면의 대표 특산품인 곶감에서 따왔다. 곶감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명견(名犬)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다. 주민 2100여 명이 사는 운주면은 곶감 농가만 260곳에 달할 정도로 곶감의 주산지다.

비쩍 말랐던 곶감이는 면사무소 직원 14명이 정성껏 보살펴 준 덕분에 살이 통통하게 찌고 부쩍 건강해졌다. 곶감이가 유명세를 타면서 면사무소를 찾는 발길도 늘었다. 박성일 완주군수도 면사무소를 찾아 “(곶감이가) 잘생겼다. 잘 키워 보라”고 격려했다.

후원도 늘고 있다. 익명의 후원자는 면사무소에 개 사료를 보냈고, 한 사료가게 사장은 “곶감이가 먹을 사료를 평생 무료로 대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은 겨우내 곶감이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지붕과 벽을 만들어 줬다.

강원양 운주면장은 “곶감이가 널리 알려진 만큼 곶감이가 사는 이야기와 함께 운주면과 완주군의 따끈따끈한 소식을 유튜브를 통해 계속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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