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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브라질·아르헨에 기습 관세 보복…"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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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확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즉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의 표면적 이유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통화를 평가절하해 미국 철강 산업과 농업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통화 가치 하락이 환율 조작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그보다는 두 나라 농산물의 중국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 대한 일종의 보복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트럼프의 발표는 트위터를 통해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자국 통화에 대한 막대한 평가절하를 주도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농부들에게 좋지 않다”고 썼다. 이어 “그러므로 나는 이들 나라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해 3월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하지만 가격 상승 우려와 수급 조절을 염려한 미국 기업의 민원과 외국 정부의 설득에 따라 일부 국가에 대해 관세를 면제했다. 지난해 8월 한국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 대해 미국 산업 상황에 따라 선별적으로 면제를 허용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처음부터 관세를 면제받았기 때문에 트럼프 트위터의 관세 “재개”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예측불허 관세 발표를 놓고 워싱턴 외교가에선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하루아침에 트럼프가 철강 관세 카드를 꺼내 든 진짜 이유는 불명확하다. 다만 트럼프 지지층인 철강·제조업 종사자들이 밀집한 '러스트 벨트'와 농업지대인 '팜 벨트' 유권자들을 의식한 행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NYT는 지난주 달러화 대비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점에 주목했다. 헤알화는 올해 들어서 가치가 10% 떨어졌다. 국내 정치 혼란과 몇 차례의 금리 인하가 주된 이유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국가부채 증가와 경제 위기로 인해 폭락했다.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가치가 60% 떨어졌다.

경제 전문가와 정부 관료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통화를 조작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통화 가치가 평가절하되면서 해외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산 상품 가격이 내려갔고, 그 덕분에 미국산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올랐다.

미ㆍ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면서 특히 중국에서는 브라질ㆍ아르헨티나산 상품이 미국산 제품에 압도적 가격 우위를 갖게 됐다.

중국은 미국에서 사들이던 돼지고기와 대두 등 농산물에 관세가 더해져 가격이 오르자 수입 경로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바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농업계가 글로벌 상품 시장에서 미국에 우위를 점한다는 우려가 나온다”면서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 이후 브라질 대두의 중국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사이 브라질ㆍ아르헨티나가 대중 무역을 강화하면서 미국 농부들 자리를 빼앗은 게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배경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그들에게) 대규모 관세를 피하게 해줬는데, 이젠 이를 중단한다. 우리 제조업과 농부들에게 매우 불공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철강 관세 부과 발표로 국가안보 목적에 따라 관세를 부과한다는 트럼프 행정부 설명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FT는 전했다.

브라질 철강 총 수출량의 9%가 미국으로 향한다. 브라질의 대중 농업 수출에 영향을 주기 위해 트럼프가 철강 관세 카드를 꺼낸 것이라면, 브라질은 어떻게 반응할까.

모니카 드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FT 인터뷰에서 “트럼프 의도를 받아들이면 중국에 대한 농업 수출을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게 된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해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NYT는 이번 트럼프의 철강 관세 발표로 트럼프 관세를 누구도 피해갈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국내 경제 위기나 미국과의 동맹 여부, 관세를 이미 면제받기로 했는지에 관계없이 갑자기 날아오는 무역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는 의미다. 트럼프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조치가 즉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미 무역대표부(USTR)는 관세 부과를 정식으로 공지하지 않았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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