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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가 신혼집…4년째 해외여행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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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양희종·이하늘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며 사용하는 장비와 함께 경기도 가평 호명산 야영장에 누웠다. 텐트, 침낭, 매트, 여벌 옷, 식량, 취사도구, 촬영 용품 등이 살림의 전부다. 장진영 기자

양희종·이하늘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며 사용하는 장비와 함께 경기도 가평 호명산 야영장에 누웠다. 텐트, 침낭, 매트, 여벌 옷, 식량, 취사도구, 촬영 용품 등이 살림의 전부다. 장진영 기자

누구나 바쁜 일상을 떠나 세계 일주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은 언제나 그 꿈을 가슴속 깊이 남겨두게 한다.

‘두두부부’ 양희종·이하늘씨 #자전거·도보로 9개국 2만3000㎞ #“새해부턴 백두대간 종주 시작”

양희종(35, 이하 양)·이하늘(34, 이하 이) 씨 부부는 그 꿈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안정된 삶의 추구는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16년부터 미국·멕시코·태국·호주 등 9개국을 여행했다. 미국 서부 해안을 잇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애팔래치아 산맥을 연결한 애팔래치아 트레일(AT), 미국의 대륙 분수령을 잇는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CDT) 등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을 완주해 ‘트리플 크라우너(Triple Crowner)’에 오르기도 했다. 1만3000㎞를 걷고, 1만㎞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두 다리와 두 바퀴로 세계를 여행하는 부부’라는 의미의 ‘두두부부’를 이름으로 내걸고 끝나지 않는 신혼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희종 씨였다. 2015년 4300㎞의 PCT를 걷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치듯 떠났고, 자신을 찾기 위한 길을 고통스럽게 걸었다. 트레일의 끝에서 그는 생각했다. 그 무엇이 됐든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살자고. 완주를 마친 희종 씨는 하늘 씨에게 고백했다. 우리의 행복한 여정을 함께 하자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희종이 내게 청혼하고 3일 만에 다시 길을 떠났다. 4개월 후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휘트니산 정상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여행하며 의미 있는 장소마다 결혼사진을 찍고 둘만의 결혼식을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부부가 되면서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도 했다.”

="또 다른 삶의 선택권이 열린 거라 생각했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부 싸움은 하지 않나.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좁은 텐트 안에서 자야 하니 싸우면 떨어질 공간도 없다.”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다. 걸으면서 이런 것들을 많이 내려놓게 된다. 아내와 함께하면서 많이 변하게 됐다.”

걷는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나.
="3~5일 정도 일정으로 걷고 마을에 내려와 식료품들을 보충해 다시 걷는다. 하루 평균 10~12시간, 20~30㎞를 걷는다. 평탄하지 않은 길이다. 설악산 종주를 매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 경비가 많이 들 것 같은데.
=“솔직히 많이 들진 않는다.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고 잠은 텐트에서 잔다. 둘의 퇴직금과 모아둔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도 많았을 것 같다.
=“말벌에 물려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고, 진드기 때문에 한 달 넘게 고생하기도 했다.”

=“설원에서 설맹이 왔다.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말 두렵기도 했다. 4일 만에 시력이 돌아왔는데 정말 감사했다.”

그럴 땐 그만두고 싶지 않나.
=“더 신중하게 발걸음을 내딛게 되고 하루하루가 가치 있고 소중해진다.”

=“위기 후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욕심도 서서히 버려지는 것 같다.”

두 사람의 다음 목적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다. 내년 1월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계획이다. 둘은 세상의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여행을 통해 얻은 행복을 자양분으로 앞으로도 발걸음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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