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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인을 유혹해보세요! 사랑 게임 '코지 판 투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8) 

모차르트가 1790년에 발표한 <코지 판 투테>는 두 쌍의 연인들이 벌이는 발칙한 사랑 게임 이야기입니다. 발칙하다고 표현한 것은 연인 간에 짝이 바뀌는 스와핑이 벌어지기도 하고, 여자의 정절을 두고 시험하는가 하면 심지어 내기까지 하는 내용 때문이에요.

<코지 판 투테>는 ‘여자는 다 그래’란 뜻이랍니다. 여자는 무엇이 다 그렇다는 말일까요? 오페라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지요. 그런데, 왜 ‘여자는...’ 일까요? 남자는 어떤데요? 상대를 선택할 때 조건은 물론이고 느낌,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것은 인지상정. 남녀의 문제는 아니지요.

이 오페라의 ‘여자는 다 그래’란 말은, 우리가 예사로 말하는 비하나 조롱의 개념이 아니랍니다. 여자의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지요. 모차르트는 후반부에 철학자의 입을 빌려 분명한 의도를 밝히고 있답니다. 따스한 마음을 지녔던 그는, 당시의 여성에게 강요된 순정주의를 비판하고 여자를 위로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피오르딜리지(소프라노)와 굴리엘모(바리톤)는 약혼한 사이입니다. 피오르딜리지는 정숙하고 신중한 성격이고, 굴리엘모는 행동이 앞서지요. 그녀와 자매인 도라벨라(메조소프라노)는 좀 더 명랑하고 외향적인 성격인데, 진지하고 고지식한 페란도(테너)의 연인이랍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소유자들이 짝이 되었군요. 여기에 세상만사 풍파를 거친 노 철학자 알폰소가 통속적인 하녀 데스피나를 내세웁니다. 이들이 자매를 유혹에 빠지도록 흔들어 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되지요.

로열오페라하우스 &#39;코지 판 투테&#39; 실황 스틸. [사진 롯데시네마]

로열오페라하우스 &#39;코지 판 투테&#39; 실황 스틸. [사진 롯데시네마]

막이 열리면, 페란도와 굴리엘모, 그리고 알폰소가 격렬하게 토론을 하고 있답니다. 알폰소는 “아라비아에 가면 불사조라는 새가 있다고 하지만, 그 새를 본 사람은 없다”며 여자의 정절도 그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두 청년은 발끈하면서 각자 자기 애인이 바로 그 불사조 같은 여자라면서 사랑을 자신한답니다. 애인이 모욕당했다고 흥분하여 칼까지 빼 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알폰소가 하루 동안 여자들이 변함없는지를 돈을 걸고 내기하자고 하고, 모두가 흔쾌히 그렇게 하기로 합니다. 두 청년은 사랑 앞에 자신만만하지요. 그런데, 알리의 노래 ‘365일’에서도 1년을 지나야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고 하잖아요. 여자의 마음이 갈대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기의 시한이 ‘24시간’이면 너무 짧군요.

자매가 애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각자 자기 애인이 최고로 멋지다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알폰소가 나타나 청년들에게 영장이 나와서 오늘 당장 전쟁터로 가야 한다고 알립니다. 물론 거짓이지요. 두 남자는 울상을 하고 나타나 이별인사를 하고, 두 여인은 슬피 울면서 차마 그들의 손을 놓지 못하건만 결국 남자들은 전쟁터로 떠난답니다.

이 틈을 타서 알폰소는 친구라면서 멋지게 생긴 외국신사를 데려와 소개하는데, 사실 두 청년이 변장한 것이지요. 허나 여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변함없다는 것이지요. 특히 피오르딜리지는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아리아 ‘바위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을 부르며 굳은 의지를 보인답니다. 도라벨라도 마찬가지고요.

청년들은 기뻐하며 알폰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허나 알폰소는 아직 단정하긴 이르다는 입장이지요. 페란도가 연인의 굳은 마음에 감동하여 아리아 ‘사랑의 아우라’로 행복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알폰소는 더욱 강력한 작전을 개시합니다. 외국신사들이 소란을 피우며 그녀들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며 독약을 먹고 쓰러집니다. 이거 큰일 났네요. 의사를 불렀는데 변장한 데스피나가 달려옵니다. 그녀는 엉터리 의학 용어를 늘어놓으며, 쓰러진 남자들을 한 사람씩 간호하도록 하지요. 어쩔 도리 없이 걱정스레 남자를 안고 간호하는 여인들. 겨우 깨어난 남자들이 고맙다며 그녀들을 껴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국신사를 간호하는 자매. [사진 Flickr]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국신사를 간호하는 자매. [사진 Flickr]

2막이 시작되면, 데스피나가 여인들에게 사랑학 강의를 하고 있답니다. 여자 나이 열다섯이면 남자가 원하는 것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다 아는데, 도대체 아가씨들은 뭐하냐고 비아냥거리며 꼬드기는 거지요.

그 말을 듣고는 웬일인지 자매가 슬슬 외국 남자들을 비교평가 한답니다. 서로 검은 머리가 좋네… 금발이 마음에 드네… 하면서 호감을 표현하는데 어라? 선택한 상대가 원래의 연인과 서로 바뀌었네요!

알폰소의 주선으로 두 사람씩 만남의 장이 열리고, 좀 더 적극적인 굴리엘모가 은근히 스킨십을 해대며 사랑을 속삭이니 결국 도라벨라가 먼저 그의 품에 안깁니다. 이에 질세라 페란도는 더 가열차게 들이댑니다. 그는 신중한 피오르딜리지 앞에 칼을 빼 들고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그녀는 ‘세상에! 나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죽으려 할까. 이 사랑을 안 받아주면 정말 죽겠구나’ 하며 그를 안아줍니다. 이 장면을 알폰소가 숨어서 다 보고 있지요.

원래 연인과는 다른 남자를 선택한 여자들. [사진 Flickr]

원래 연인과는 다른 남자를 선택한 여자들. [사진 Flickr]

남자들은 서로 상대의 여인을 유혹했으니 피장파장이고, 결국 내기는 알폰소가 이겼답니다. 그가 그들에게 따라 외치라고 합니다. “코지 판 투테!”

오래 전 오페라이지만, 뜨거움을 잊고 습관처럼 만나거나 떨림 없는 전화를 해대는 현대의 연인들에게는 새로운 사랑, 움직이는 사랑을 일깨워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오페라 아닌가요? 결국 이 모든 것이 연극임이 밝혀지고, 서로 원래 연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허나, 그들의 사랑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성숙되었겠지요. 비 온 뒤에 땅 굳는 것처럼 말이죠.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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