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집값 상승률은 세계 최고, 계층 상승 자신감은 바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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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부 출범 후 대부분 기간 동안 집값은 안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말과는 달리 현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국가·도시 비교 사이트인 넘베오를 보면 지난해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2016년 대비 38%로 비교 대상 20개 도시 중 가장 높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통계에서도 2017~2018년 서울 집값은 14% 올라 조사 대상 8개 도시 중 파리와 함께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세계 집값 상승세가 꺾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추세다.<중앙일보 11월 25일자 B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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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서울시내 웬만한 아파트는 이제 서민들이나 청년들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됐다. KB아파트 통계 결과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현 정부 출범 때보다 3억원이나 올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집값은 잡겠다던 현 정부의 역설이다. 늘어나는 도심 주택 수요에 대해 공급 확대 대신 수요 억제에 매달려 온 규제 일변도 정책은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이달 초 민간 주택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오히려 서울 주요 아파트는 신(新)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각종 규제에도 서울 집값 천정부지 #‘넘사벽’ 아파트에 사회이동 좌절감

문 대통령은 “더욱 강력한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했지만,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17번이나 쏟아낸 정부 대책이 결국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정부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수요-공급 원리 대신 아직도 ‘투기 근절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다. 보유세를 올리는 대신 양도세를 낮춰서 다주택자나 고가주택 소유자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고용 문제와 함께 급격한 집값 상승은 우리 사회의 활력과 유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어제 발표된 통계청 2019 사회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계층이동 기대감은 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2.7%에 그쳤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래 세대에게까지 이런 비관이 투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 세대의 지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비율은 28.9%로 10년 전보다 20%포인트나 줄었다. 중산층이 월급 한푼 쓰지 않고 10년 이상을 모아도 서울에 집 하나 장만할까 말까 한 현실에서 이런 비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사회 이동성이 약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추세다. 그러나 그 이유 중 하나가 무능한 부동산 정책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좌절감 때문이라면 너무 슬프다. “모두가 강남에서 살 필요는 없다” “개천에서 용이 될 필요 없이 가재·개구리·붕어로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해 왔던 정부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