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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세돌 9단, AI와 '치수 고치기'로 은퇴대국 둔다

중앙일보

입력

이세돌 9단이 국내 인공지능 '한돌'과 '치수 고치기'로 다음달 은퇴 대국을 벌일 예정이다. [사진 중앙포토]

이세돌 9단이 국내 인공지능 '한돌'과 '치수 고치기'로 다음달 은퇴 대국을 벌일 예정이다. [사진 중앙포토]

이세돌(36) 9단이 인공지능(AI)과 '치수 고치기'로 은퇴 대국을 벌인다. 프로가 AI와 치수 고치기 대결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수(置數)는 하수와 상수의 실력의 차이를 나타내는 돌의 개수를 말한다. 실력 차이가 크게 날수록 치수가 늘어나게 된다. 치수 고치기 대결을 하면 승패에 따라 치수가 달라지는데, 결국 대국자 간의 실력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25일 복수의 바둑 관계자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국내 AI '한돌'과 치수 고치기로 은퇴 대국 3번기를 벌인다. 다음 달 18일 서울에서 열리는 첫 번째 대국은 이세돌 9단이 '두 점'을 깔고 한돌에 덤 7집 반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래 사람끼리 접바둑을 둘 때는 덤을 주지 않지만, 이세돌 9단이 덤을 주는 이유는 AI의 초깃값 세팅 때문이다. AI는 초기에 개발될 때 흑을 잡으면 무조건 중국 룰에 따라 덤을 주게 세팅이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세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 9단은 치수에 상관없이 흑을 잡으면 무조건 한돌에 덤 7집 반을 줘야 한다.

첫 번째 대국 결과에 따라, 두 번째 대국은 치수가 달라진다. 만약 이세돌 9단이 1국에서 승리하면, 두 번째 대국은 '선(先)'으로 열리게 된다. 하지만 이 9단이 여전히 덤 7집 반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호선(互先)'과 같은 조건이다. 만약 1국에서 이 9단이 패배하면 두 번째 대국은 '세 점'을 깔고 두게 된다.

두 번째 대국에서도 치수 고치기는 계속된다. 19일 서울에서 열리는 2국에서 이세돌 9단이 2연승을 거두면, 세 번째 대국에서 이 9단은 역으로 한돌을 접게 된다. 1승 1패면 다시 이 9단이 '두 점'을 깔고, 최악의 경우에 2연패를 거두면 '네 점'을 깔고 세 번째 바둑을 두게 된다.

마지막 대국이자 세 번째 대국은 21일 이세돌 9단의 고향인 전라남도 신안에서 열린다. 20일은 이세돌 9단과 대국 관계자가 서울에서 신안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대국이 열리지 않는다. 은퇴 대국의 제한 시간은 2시간이고, 대국 중계는 SBS와 K바둑이 함께 맡을 전망이다.

이 9단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4-1로 패배했다. 이때 거둔 1승은 지금까지도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로 남아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 9단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4-1로 패배했다. 이때 거둔 1승은 지금까지도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로 남아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번 대결은 최초로 벌어지는 프로기사와 AI의 치수 고치기다. 그간 프로기사와 AI의 실력 차이는 두 점에서 세 점 사이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치수 고치기 대결을 한 적은 없어서 정확한 차이는 알 수 없었다. 이번 대결을 통해 프로기사와 AI의 실력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게 됐다.

더구나 프로의 바둑에서 치수 고치기 대결이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치수는 상수와 하수를 나누는 근거라 프로의 세계에선 치수를 두지 않는 것이 관례다. 과거 일본에서 오청원(1914~2014) 9단을 중심으로 강자들이 자신의 바둑 인생을 걸고 치수 고치기를 하기도 했지만, 현대 바둑에선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당시 기타니 미노루 9단이 오청원 9단에게 패배한 뒤 삭발을 하고 급격한 하락세를 걸었을 만큼 패자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권위의 손상을 주는 대결이다.

이 9단이 상대할 '한돌'은 NHN이 1999년부터 한게임 바둑을 통해 쌓아온 바둑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AI다. 지난 1월 국내 프로기사 상위권 기사 다섯 명과 릴레이 대국에서 5연승으로 전승했다. 지난 8월에는 중국 산둥성에서 열린 '2019 중신증권배 세계 AI 오픈'에서 3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입증했다.

바둑계에선 이 9단이 쉽지 않은 대결을 벌일 것으로 전망한다. 양건 9단은 "이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과 인간의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져서 두 점을 깐다 해도 이세돌 9단이 승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마지막 대국인만큼 최선을 다해 싸워줄 것으로 믿는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이 9단은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4-1로 패배했다. 이때 거둔 1승은 지금까지도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로 남아 있다. 그는 지난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프로기사직을 은퇴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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