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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명곡 표현할 댄스 익히느라 해병대 입소한 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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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라운지] 뮤지컬 ‘보디가드’ 주연, 가수 박기영 

박기영이 6년만에 출연하는 뮤지컬 ‘보디가드’는 LG아트센터에서 11월 28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공연된다. 신인섭 기자

박기영이 6년만에 출연하는 뮤지컬 ‘보디가드’는 LG아트센터에서 11월 28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공연된다. 신인섭 기자

‘팝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은 1990년대 많은 여가수들의 워너비였다. 가수 박기영도 “LP판이 마르고 닳도록”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1인이다. 그의 이름이 전설이 된 지금, 박기영은 그의 명곡들로 채워진 무대에 선다. 휴스턴이 전성기 시절 출연했던 영화 원작의 뮤지컬 ‘보디가드’(11월 28일~2020년 2월 23일 LG아트센터)다. 감격에 차 있을 줄 알았는데,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만난 박기영은 “화가 난다”며 투덜댔다. “휘트니 휴스턴에게 완벽히 낚였다”는 것이다.

힘든 연습에 대상포진, 링거 투혼… #가수이자 엄마로서 역할 공감도 #제 보디가드? 팬클럽 출신 매니저 #‘팝의 디바’ 그녀가 하늘서 봤으면…

“제가 휴스턴의 라이브 영상을 다 봤지만 이렇게 춤추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비욘세 정도나 할까 싶은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인데, 이런 안무를 소화하면서 노래를 13곡이나 해야 하죠. 어릴 때부터 완벽히 숙지한 노래들이 다 개사가 됐고, 심지어 키도 낮춰 불러야 해서 힘드네요. 키를 올려 부르고 싶은데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융통성이 전혀 없어요. 별수 없이 작품 안에 저를 구겨 넣고 있죠.(웃음)”

뮤지컬 경험은 2002년 ‘포비든 플래닛’과 2013년 ‘사운드 오브 뮤직’ 딱 두 작품이다.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다지 열정이 없었다. 자신의 히로인인 휘트니 휴스턴 역할이라 덥석 수락해놓고 보니 여느 뮤지컬과 차원이 달랐다. 또 다른 ‘레이첼’ 김선영 배우도 “뮤지컬 인생 20년에 이렇게 힘든 역할은 처음”이라고 했단다.

“해병대 입소한 줄 알았어요. ‘부트 캠프’라고 아침부터 플랭크, 스쿼트 등 9가지 운동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데, 나름 기초체력이 있는 편인데도 얼마나 힘들던지. 안무에 노래까지 소화해야 하니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거죠. 링거 맞고 대상포진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지만, 거북이등 같은 복근을 얻었네요(웃음).”

휘트니에게 노래의 모든 것 배워

그는 “초연 배우였던 가수 양파(이은진)가 출연을 고사해서 제의가 온 걸로 안다”며 “100% 이해한다”고 했다. “은진이가 굉장히 차분한데 레이첼은 화가 많은 캐릭터거든요. 저는 화가 나서 캐릭터 소화는 잘 되네요(웃음). 대신 로맨스가 잘 안돼요. 상대역인 이동건, 강경준 배우가 귀여운 동생 같은 친구들이라.”

여주인공에게 오롯이 포커싱된 작품이라 힘들다면서도, 앙상블 배우들의 노고를 언급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어제 다른 배우의 런쓰루를 보면서 문득 미안함이 몰려와 눈물이 났어요. 주연은 여러 명이 돌아가며 하지만, 앙상블은 원캐스트로 아크로바틱 수준의 춤을 계속 춰야 하거든요. 결국 기어나가더군요. 제가 틀리면 똑같은 걸 또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 친구들 위해서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휘트니 휴스턴

휘트니 휴스턴

박기영은 1992년 출시된 ‘보디가드’ 앨범의 CD·LP·테이프를 지금도 갖고 있다. ‘디바의 바이블’에게 노래의 모든 것을 배웠고, 여전히 신적인 존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이 제 대학 입시곡이었어요, 제가 록과 소울, 팝을 다 소화할 수 있게 된 게 그의 덕분이죠. 호흡부터 발성, 테크닉을 다 그녀에게 배웠으니까요. 너무 사랑했던 그녀가 힘든 나날을 보내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사망 전 해인 2011년 한국에 월드투어 왔을 때 한 곡 부르고 목이 잠겼는데, 울면서 봤어요. 한국 관객은 그래도 응원해주고 공연을 마쳤는데, 그 뒤 호주에서는 관객 야유로 공연이 중단되고 환불사태까지 갔다죠.”

그는 휴스턴의 불행한 삶을 인간적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한 비극이라는 것이다. “유년기가 불행했잖아요. 가족관계 단절에 대한 강박 때문에 나쁜 남자와 이혼하지도 못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간 거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유년 시절인 것 같아요.”

그 자신이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가수이자 엄마인 ‘레이첼’의 이야기에 자기 삶을 비춰보기도 한다. 딸의 유년시절 가수 활동을 상당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애착 육아’를 했지만, 지금은 가수와 엄마 역할 양쪽 다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게 그녀다.

“직접수유가 아니면 안 되는 아이라 38개월까지 모유 수유를 하며 ‘껌딱지’처럼 붙어지냈어요. 션·정혜영 부부가 선물해준 유모차가 새 것 같을 정도로 안고만 다녔죠. 저녁에 외출 한 번 한 적 없고, DJ 제의나 대학 출강도 거절했어요. 그럼에도 휘트니 역할이기에 이 공연을 하게 된 건데, 아이는 ‘엄마 아들 역할하는 오빠에게 질투난다’며 훌쩍이더라고요. 영화를 보여주며 이해시켰어요. 엄마가 이 언니 노래 듣고 가수 꿈을 이뤘는데, 너무도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이 언니가 하늘나라에서 엄마 공연 보고 기뻐했으면 좋겠다고요.”

레이첼처럼 박기영에게도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다. 팬클럽 회원이었다가 3년 전 매니저가 된 ‘성덕(성공한 덕후)’인 이윤 대표다. 그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찰떡 호흡으로 듀엣도 불렀던 숨은 실력자다. “20년 가까이 여기저기 팔려만 다녔는데(웃음), 지원해 줄 테니 하고 싶은 음악 하라는 대표를 처음 만났죠. 그래서 무대에 올라가서도 막 찾게되요.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시는 줄은 리허설 때 처음 알았어요. 그간 듣는 귀가 남다르다고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오래 하셨대요.”

이창동 감독의 응원이 터닝 포인트

한국 가요계는 레이첼처럼 중년 여가수가 구름 위에서 수퍼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며 화려한 삶을 사는 세계는 아니다. 박기영의 활동만 들여다봐도 팬에게 바짝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점철돼 있다. 스튜디오 공연에서 사연을 받아 노래를 만들어주고, 계절마다 싱글을 발표하는 작업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불후의 명곡’ 같은 경연 프로그램에 나가서는 록·재즈·블루스·탱고·가스펠·오페라 등 온갖 장르에 도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저는 유연한 사람이라 음악을 장르로 묶어놓는 것보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거든요. 예쁘고 다양한 진귀한 ‘보석’들을 쫙 펼쳐 보여드리고 싶어요. 경연 프로그램도 이기려고 나간 게 아니라 음악에 너무 목말라서였죠.”

그는 아이돌 중심의 가요계에서 설 자리가 없던 2010년이 오히려 가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한 영화제 시상식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헌정곡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최근 윤정희 선생님 알츠하이머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영화 엔딩에 감독님이 지으신 시가 나오는데, 한 글자도 빼지 않고 곡을 입혀 ‘아네스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죠. 감독님이 너무 고마워하시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계속해달라’고 응원해주셨어요. 그 이후로 경연 프로에 나가면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게 됐죠. ‘보디가드’ 음악감독도 ‘박기영은 다채로움’이라고 하시더군요. 13곡의 넘버에서 그걸 보여드릴께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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