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호' 선원 취재 김영미 PD "나 혼자만 떠나와서 미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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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 100일 동원호 선원들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해적들에 의해 납치된 원양어선 동원호 전종원 통신장 .피랍생활을 취재한 MBC ‘PD수첩’은 오는 25일 ‘전격 르포! 피랍 100일, 소말리아에 갇힌 동원호 선원들의 절규-조국은 왜 우리를 내버려 두는가’(가제)편을 통해 방송된다.(서울=연합뉴스)

오마이뉴스가 소말리아 반군들에 의해 역류된 '동원호' 선원들을 취재한 김영미 PD를 인터뷰한 내용을 25일 보도했다.

동원호는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피랍된 후 100일이 지났지만 외신 등을 통해 간간이 소식이 전해질 뿐 근황이 국내에 잘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 피랍된 인원은 한국인 선원 8명과 중국인 3명, 인도네시아인 9명, 베트남인 5명 등 모두 25명이다.

분쟁지역을 전문으로 취재해 온 김영미 PD(36 . 크릭 앤 리버 코리아 소속 프리랜서 PD)는 국내 언론 최초로 소말리아 해적단에 들어가 동원호 선원들의 생활을 밀착 취재했다. 카메라 한 대에 의지해 지난 3일부터 20일까지 소말리아에 머물렀던 김 PD는 해적단을 인터뷰했을 뿐 아니라 소말리아를 점령한 반군 지도자를 직접 만났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김PD와 인터뷰한 내용 전문.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

"소말리아 지역 방송국에서 우리 선원을 다룬 1시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했다는 이야기를 아는 외신기자에게서 듣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석 달이 넘어가는데 선원들에 관한 소식이 한국에는 거의 없었고. 내가 취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 PD수첩>에서 연락을 해 와 방송하게 됐다."

-위험하기도 하고, 취재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소말리아가 전화통화가 너무 안 돼 연락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두바이와 에티오피아를 거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로 들어갔는데, 모가디슈에서 대규모 교전이 일어나서 위험했다. 또 모가디슈에서 선원들이 있는 하라데레로 육로로만 20시간을 가야했는데, 그 상황도 상당히 위험했다. 해적들에게 취재 협조를 요청할 때도 힘들었다. 전화가 안돼 무선 햄으로 연결했고, 한국 언론이라니까 싫어했다. '당신들이 한국인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이 있다'고 운을 떼니 그쪽에서 '아니다'고 말하고, 내가 '직접 보기 전에 믿지 않겠다'면서 취재를 유도했다. 이슬람 반군 쪽에서 보증을 서주고, 신변보장에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취재했다."

-선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현재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 북쪽 하라데레의 오비아 항 인근에 정박중인 동원호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갇혀 있는 상황이다. 해적이 총으로 위협.감시하고 통신시설을 다 잠궈서 외부와 연락을 할 수 없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건강 상태는 모르지만 너무 말랐고 안 좋아 보였다. 선원들이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심하게 앓고 나을 때쯤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갑판장은 피랍된 후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었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어 할 것 같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섭섭함을 많이 토로했다. 중국 대사관에서는 연락이 왔는데, 한국 대사관에서는 한 번도 연락이 안 왔다고 한다. 중국 대사관에서 중국인 3명이라도 구출하겠다고 했는데, 중국 선원들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면서 남았다고 한다. 4월 중순쯤 미군 군함이 인근 해상까지 구출하러 왔을 때 해적들이 동원호 선원들을 갑판에 세워놓고 죽인다고 위협하자 미군이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 이후 차라리 바다에 뛰어 들어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어 한다."

-현재 소말리아 정치적 상황은 어떤가.

"이슬람 군벌이 미국이 세운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쫓아내고, 점령하려는 상황이다. 모가디슈에 도착한 7월초에는 시가지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일어나 100여명이 죽기도 했다. 과도정부는 이미 한국 선원들이 해적에게 잡힐 때부터 도망다니기 시작해 시골마을에 정착해 있었고, 모가디슈 근처에는 오지도 못했다. 과도정부는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오히려 이슬람 반군이 모가디슈를 장악한 후 안전해졌다."

-해적들의 요구가 무엇인가.

"돈을 주면 풀어준다는 것이다. 한화로 10억 원 안팎의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데, 해적들 사이에서 돈 나누는 문제를 포함해 절차가 복잡하다. 협상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의 말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정부 쪽에서는 노력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풀려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협상 주체를 몰랐던 것 같다. 해적의 생각은 우리(정부) 생각과 다르다. 정부에선 시간을 오래 끌수록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해적들은 오래 끌수록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돈을 올려 받으려 한다. 해적들이 한국에서는 대단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보니 조직원도 41명이고, 무기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센 것 같진 않았다. 취재 중에도 자기들끼리 파벌문제로 싸우고 허술해 보였다. 정부가 직접 협상을 해도 무방해 보인다. 한국 대통령이 사건 초기 콩고 대통령에게 요청했던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과도정부에 의지한 것도 그렇다. 과도정부는 자기 목숨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도정부 수반이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은 하라데레까지 미치지 못한다고 인정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해야하나.

"현재 소말리아를 장악한 이슬람 반군과의 접촉이 필요하다. 직접 협상이 이뤄지도록 해야할 것 같다. 현재 모가디슈 상황은 괜찮은 편이다. 또 돈을 주더라도 협상 절차가 복잡하니 구체적인 협상 방법을 연구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위험 등을 이유로 현지에 가지 않았는데, 직접 접촉이 가능할까.

"나는 거기 혼자 갔다 왔다. 더 이상 안전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다. 정부가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납치 사건이 한 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정부의 정보 부재도 심각하고. 이 사건이 있기 얼마 전 납치사건이 있어서 선원들에게 권고나 경고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언론에서도 거의 잊혀진 존재다.

"언론에서 잊혀졌기 때문에 취재하고 싶었다. 외교부의 입장을 듣는 것으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선원들이 한국 언론이 월드컵이랑 선거 때문에 우리를 잊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 선원들이 그 (한국에서 잊혀진) 사이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취재는 나 혼자 한 것은 아니다. 이슬람 반군 쪽에 운 좋게 선이 닿았고, 한국 외교부 출입기자와 소말리아 기자들이 많이 도와줬다."

-선원들은 김 PD를 만난 것이 피랍 뒤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일 텐데.

"한국말을 하기 전까지 한국 언론에서 왔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인 걸 알고 굉장히 반가워했다. 그리고 돌아갈 때 꼭 한국에서 방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한국인인데 그분들은 인질로 배에 갇혀 있고, 나는 자유의 몸으로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헤어지는 순간, 그 분들의 눈을 봤는데 충격이었다. 부러워하는 그 눈빛이…. 나 혼자만 인질이 아니어서 소말리아를 떠나왔다. 그게 너무 괴롭고 충격이다. 나도 사람인데…(울음)."

<디지털뉴스digitalnew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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