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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50% 물갈이에···물밑선 "누가 기획했냐" 들끓는 한국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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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재건의 주춧돌일까. 또 다른 분열의 신호탄일까. 자유한국당 총선기획단이 21일 발표한 ‘지역구 의원 3분의 1 컷오프(불출마 선언 제외)’ 방안을 두고 나오는 엇갈린 반응이다. 과거 20% 선에서 컷오프를 했을 때 현역 교체율이 40%를 넘었다. 이번엔 “50% 이상”을 예상했다. ‘역대급’ 수준이다.

문제는 향후 나타날 당내 반발과 이로 인한 실현 가능성이다. 발표 이튿날인 22일 공개 반응은 “과거에도 결과적으로 40%는 물갈이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강효상 의원)란 수준이다. “칼을 들겠다”고 한 황교안 대표의 단식 일성(一聲) 직후 나온 방안이고, 그만큼 당 지도부 의지도 강하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원칙도 세우기 전에 숫자부터 덜컥 발표하는 건 성급했다”는 반발과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들었냐. 총선기획단의 권한을 넘은 일”이라는 불만이 감지된다. “현실화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① “숫자부터 덜컥?…성급하다”

박맹우 자유한국당 총선기획단 단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기획단 회의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뉴스1]

박맹우 자유한국당 총선기획단 단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총선기획단 회의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뉴스1]

우선 “일의 선후(先後)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총선 로드맵·콘셉트 같은 ‘대전략’을 짠 뒤, 기준과 교체율을 정할 일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쇄신 요구가 속출하고 당이 수세에 몰리자 성급하게 쇄신 카드를 꺼내다 보니 50%라는 숫자부터 제시한 것”이라며 “조금이 아니라 많이 성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장부터 꼬였다. 경험 부족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의 한 중진의원은 “이기는 공천을 해야지 자르는 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영남권 의원은 “도대체 이런 걸 기획해서 올린 사람이 누구냐. 총선기획단이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처럼 컷오프 비율까지 정하는 건 처음 본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② “연쇄 탈당 우려… 막을 장치는 있나”

단식농성 사흘째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단식농성 사흘째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대로 현실화되면 “1~2월쯤 시행하면 연쇄 탈당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야당은 공천 불만자들의 탈당을 막을 장치가 없다”(영남 중진의원)는 이유다. 사실 여당보다 야당이 ‘물갈이’하기 어렵다. 여당엔 산하기관장 등 낙천자들을 달랠 ‘당근’이 많기 때문이다. 야당에서 성공한 '개혁 공천'이란 인상을 남긴 16대 한나라당 공천의 경우 상징적 소수를 날렸다. 영남의 한 중진의원은 “보수 세력이 똘똘 뭉쳐있어도 공천 배제를 하면 무소속 출마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데 지금은 분열돼있는 상태”라며 “50% 이상 물갈이를 실제 시행할 경우 대규모 탈당은 물론 분당(分黨) 사태까지 초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탈당·분당 방지책을 두고도 벌써 의견이 분분하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공관위를 최대한 중립적인 당 외부 인사 중심으로 꾸려 불만을 사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 당장 황 대표가 지시해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중립적인 외부 인사들이 주체가 돼야 국민들로부터인정 받는 쇄신이 될 것. 쇄신 대상이 주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달라”(홍준표 전 대표)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③ ‘보수 통합’과 ‘패스트트랙’이란 변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변혁 대표. [연합뉴스·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변혁 대표. [연합뉴스·뉴스1]

보수통합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선거법이란 거대 변수도 ‘물갈이’의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보수통합의 경우, 쇄신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통합에 도움되겠지만, ‘변혁(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현역의원 9명)’과의 협상 과정에서 변혁에도 유사 기준을 적용할지 쟁점이 될 수 있다. 당 내부에서는 “만약 한국당 현역 의원만 대거 탈락시키면 반발이 더 커질 것”(중진의원)이란 우려도 나왔다.

본회의 상정이 다가오고 있는 선거법 개정안 역시 변수다. 지역구 축소를 골자로 한 개정안은 지역구 의석을 28석(253석→225석)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구 축소와 지역구 3분의 1 컷오프 방침이 맞물리면 ‘쇄신 방정식’이 한층 복잡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역대 최대여야 변화 느낀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 박맹우 사무총장, 이진복 총선기획단 총괄팀장. [연합뉴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 박맹우 사무총장, 이진복 총선기획단 총괄팀장. [연합뉴스]

각종 우려와 불만에도 한국당 지도부와 총선기획단이 내세우는 명분은 ‘변화의 필요성’이다. “반발 없는 공천개혁이 가능하겠느냐”(핵심관계자)는 말도 나온다. 총선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은 이진복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50%란 숫자를 제시한 건) 역대 어떤 공천보다 교체율이 높아야 ‘한국당이 변하고 있구나’라고 국민들이 느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쇄 탈당 우려 등 후유증과 관련해 이 의원은 “완벽할 수는 없다”면서도 “컷오프가 된 분이 다른 데로 가셔도 유권자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컷오프 기준에 대해서는 “정량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를 강조했다. 외부인사 위주 공관위원 구성으로 공천 잡음을 최소화해 보겠다고 한다. 당의 한 재선의원도 “50%라는 숫자가 주는 쇄신의 이미지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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