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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각본 없음’의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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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최민우 정치팀 차장

‘각본 없음’은 문재인 대통령 소통의 트레이드 마크다. 취임 100일과 두 차례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분야만 나눌 뿐,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조율하지 않는다”고 했다. 약속된 질문하고 원고대로 답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의 거부였다. 한편으론 해외 유명 시상식처럼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발 실수마저 알고 보면 아카데미상의 정교한 시나리오와 반복 연습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19일 ‘국민과의 대화’는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첫째 편향성. MBC는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1만6000여명 가운데 패널 300명을 뽑았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문팬’의 놀이터인 것처럼, 대통령을 만나서 묻고 싶은 이들도 대부분 지지자 아닐까. 그러니 “눈물이 터졌다”고 하지 않나. 북 선원 북송, 정시 확대 등 아픈 질문은 없었다. 둘째 신변잡기. 어떤 이는 “3남 1녀 중 둘째”라고 했다. 헌법 가치를 두고 일장연설을 하거나 “전에 사진 찍어주셔서 영광”이라는 이도 있었다. 왜 이런 개인사를 공영방송에서 전 국민이 봐야 하냐. 질문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와 분류, 조정도 없었다는 뜻이다. 각본 없음을 핑계로 한 무책임한 방치다. 그러니 같은 편마저 “도떼기시장”(김어준)이라지 않나. 셋째 비민주성. “제가 군대 가기 전까지 (모병제) 될 수 있나” “서류를 박 모 국장이 지금까지 검토한다” 등 하소연이 쏟아졌다. 대통령이 권력자라고 이런 민원을 척척 해결한다면 그거야말로 직권남용 아닌가. 어쩌면 조선시대 행차 나간 왕이 백성을 만나 굽어살피는 듯한 장면 연출이 청와대 본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는 쇼만 하고, 한국당은 쇼도 못 한다고 한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쇼통’도 시효만료를 알리고 있다.

최민우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