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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국회의원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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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하준호 정치팀 기자

1955년 3월 23일 오전 10시 국회. 이기붕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의시간에 관한 건’을 토의 안건으로 올렸다. 당시 국회법이 정한 본회의 개의시간은 오전 10시. 한데 절반이 넘는 의원들이 이 시간을 지키지 않아 10~15분간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장은 하릴없이 회의를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제시간에 출석한 의원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의장이 말했다. “정각에 성원이 못 되어서 유회를 할 때는 그때 참석하지 못하신 의원들의 명단을 신문에다 발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한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국회법에 엄연히 우리가 시작은 10시에 해가지고 오후 1시까지 하게 법으로서 시간을 정해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이 오거나 두 사람이 오거나 1시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변진갑 의원)

이 의장이 반박했다. “1시까지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어요. 우리가 소학교 학생도 아니고 각기 바쁜 일들이 계신데 그런 것을 참작 아니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중략) 내가 지금 출석을 안 하면 내 이름이 신문에 발표될 것이니까 사정을 좀 봐달라고 하면 용서 얻기가 대단히 좋은 조건이 됩니다.”

반세기도 더 된 속기록을 뒤져본 건 최근 ‘회의 결석 시 벌칙 부여’를 국회 혁신 방안의 하나로 토의 중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를 보면서다. 토의 과정을 지켜본 한 민주당 인사가 전한 반대논리가 64년 전과 비슷하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을 초등학생 취급하느냐는 얘기에요.”

그런 이들에게 당시 28세, 3대 국회 최연소였던 김영삼 의원(14대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선거 때에 국민들에게 충실하게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국회 본회의에 나가지 않고 딴 일을 보고 다닌다는 것을 알려야만 할 것입니다. 개인의 일에 바쁜 것으로 말미암아서 전체 국회의원 203명이 공동책임을 져라, 그야말로 도매금에 넘어갈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회의 지각에 결석까지 일삼으면서 정치하고 싶다면 내년에는 그 정치, 의원 직은 내려놓고 하시길 바란다.

하준호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