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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혁백의 퍼스펙티브

검찰의 ‘사법통치’ 탐욕, 다른 권력기관 탐욕으로 제어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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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검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까

서울중앙지검 청사의 검찰 로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면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과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서울중앙지검 청사의 검찰 로고. 막강한 권력을 지닌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면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과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스1]

절대주의에서 근대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법치주의의 중심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로 이동했다. 절대주의 아래서는 국가가 통치 도구인 법을 통해 시민을 지배하는 ‘법에 의한 지배’ 또는 법가주의 통치를 실현하려 했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아래서는 사법부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법이 정한 한계 내에서 국가 권력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의 지배’를 실현하려 했다.

검찰을 권력기관에서 ‘시민의 대리인’ 만들려면 #일반 공무원보다 더 적법 절차 원칙 지키게 하고 #상명하복 관료주의인 검사동일체 원칙 폐기하며 #검찰 권력 제한 위해 수사권을 경찰과 공유해야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에 선행한다. 법치국가(Rechtstaat)에 의해 법치가 확립된 뒤,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이 보호되는 시민이 창출됨으로써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됐다. 드워킨(Dworkin)의 말처럼 법의 지배는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다. 민주주의 없는 법치는 있을지 모르나 법의 지배 없는 자유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간에는 긴장이 있다. 민주주의 아래서 인민주권은 무제한적·절대적 권력인데 반해, 법의 지배는 헌정주의에 의해 제약되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법의 지배 개념에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법의 지배를 보장하는 핵심적 법적 장치는 자유 헌정주의(liberal constitutionalism)이다. 자유 헌정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이 시민의 생명·자유·재산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국가권력의 헌법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시민의 사적 권리를 보호하고, 진정한 주권 행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민주화 이후 무소불위 권력 검찰

검찰은 행정부에 소속됐기 때문에 사법기관이 아니라 준사법기관으로 불린다. 검찰은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선출되지 않고 임명된 관료로서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검찰은 주관적 인격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관과 달리 철저히 실정법주의에 따라 법을 집행한다. 그래서 검찰은 삼권분립체제 아래서 사법부가 누리는 자율성·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검찰은 법의 지배를 실현하는 준사법기관이자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하는 사법 통치기구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대한민국의 핵심적 권력기관은 경찰·군대·중앙정보부를 거쳐 민주화 이후에는 검찰로 이동했다. 법실증주의자인 하트(Hart)는 시민들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떼와 같다”고 하면서 검찰의 실증주의적 법 집행이 반드시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법 실증주의에 따르면 실정법과 정의는 분리돼야 하고, 법은 도덕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이러한 검찰의 법실증주의는 민주주의 원리와 긴장할 수 있다.

검찰의 권력은 기본적으로 형사사법 절차의 모든 권한, 특히 기소권을 제도적으로 독점하는 데서 나온다. 역설적으로 민주화의 산물로 검찰의 권력 강화가 이루어졌다. 군부 권위주의 시대에 검찰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나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는 권력기관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권력기관 중 검찰만이 살아남게 되자, 형사사법 권력을 독점한 검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려는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법통치(juristocracy)를 강화시켰다. 사법통치 강화는 시민의 선택이 선거 밖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를 번성케 하였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는 선거·의회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정당을 약화시키며, 정치 교착과 극단적 정치 양극화와 갈등을 낳았다.

검찰 사법통치로 정치의 범죄화 초래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사법통치의 심화는 ‘정치의 범죄화’를 초래했다.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법적 수단을 동원하면 많은 정치인이 범죄자가 된다. 그래서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을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언론 폭로, 국정조사, 소송 같은 비선거적 수단에 의존하면 사법통치가 더욱 강화된다.

민주화 이후 검찰이 유일한 사법 정의의 수호자로 남았을 때, 검찰의 권력 남용 문제가 발생했다. 고대 로마 시인 베르날리스가 “수호자는 누가 수호하느냐”라고 풍자했듯 ‘수호자’ 검찰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냐는 과제가 제기됐다. 검사의 권력 기관화는 ‘국민의 지배’를 실현하려는 의회와, ‘법에 의한 지배’를 관철하려는 검찰 사법통치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의 사법통치는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동시에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어떻게 검찰을 사법정의 수호자로 거듭나게 할 수 있겠는가. 검찰 민주화에는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이 있다. 대의 민주주의자들은 검찰을 철저히 주권자인 시민 의사를 대표하는 대리인으로 만들고, 자유·인권·평등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며, 나아가 참여민주주의를 검찰 조직 운영에 도입해 법의 지배를 구현하려 한다.

반면 법치 민주주의자들(legal democrats)은 준사법기관으로서 검찰의 중립성·독립성을 확보해 검찰을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시켜 ‘법에 의한 지배’를 실현하려 한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확보 노력은 검찰을 사회 세력의 영향이나 외압으로부터 격리해 폐쇄적이고 자율적인 관료조직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 시급

현재 논의되는 검찰 개혁은 검찰 조직의 자율성 증대가 법에 의한 지배를 강화한다는 데 주목해 법의 지배 확립을 통해 검찰 민주화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첫째, 검찰을 권력기관에서 ‘정의의 수호자’ ‘시민의 대리인’으로 거듭나도록 민주적 통제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준사법기관으로서 검찰은 일반 공무원보다 더 합법성의 원칙, 적법 절차의 원칙을 준수하고, 공정성과 중립성의 규범에 부응해야 한다.

둘째, 검찰을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관료조직으로 만드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실질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셋째, 검찰권의 비대화·비민주화를 촉진하는 기소편의주의와 조건부 기소유예, 불기소처분, 공소장 변경 등은 제한되거나 폐기돼야 한다.

넷째,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사권을 공유하게 해야 한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 매디슨(Madison)은 “탐욕은 탐욕으로 제어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를 증진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탐욕은 다른 권력기관의 탐욕으로 제어해야 한다.

다섯째, 검찰 조직에도 참여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배심원제를 도입하여 검사의 기소 독점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커뮤니티 검찰제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지방 검사장과 같은 검찰 고위직을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전환해서 투표를 통한 시민의 검찰 통제가 가능케 해야 한다.

여섯째, 정당과 의회는 가급적 모든 문제를 정치적 타협과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치권이 사법적 쟁송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면 검찰의 사법통치를 더욱 조장할 것이다.

사법통치(juristocracy)
법원 등 사법기관과 검찰 등 준사법기관의 정치적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걸 뜻한다. 현대 국가에서 정치인이나 관료의 영역으로 간주된 국가 정책과 관련한 중요 결정에 법원이 통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의회 주권이 후퇴하면서 사법부의 권력이 팽창하는 것이다.

배심원제(陪審員制)
법률 재판 제도의 하나.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 가운데서 선출된 배심원으로 구성된 배심에서 기소나 심판을 하는 제도. 기소를 행하는 것을 대배심, 재판을 행하는 것을 소배심이라고 한다. 배심원이 기소를 할 수 있어 검찰의 기소 독점을 제한한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