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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 전문 부장검사 첫 칼 빼들어…“주도권 쥐기 위한 수사” 비판도

중앙일보

입력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취재진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취재진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약업체들이 정부에 백신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담합을 벌인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 취임사에서 ‘공정한 경제 질서’를 강조한 가운데 검찰 내 공정거래 전문가로 꼽히는 구상엽(45‧사법연수원 30기) 반부패수사1부장이 진두지휘한 첫 사건이다.

 15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구상엽)는 국가 의약품 조달 사업과 관련하여 입찰담합 등 불법카르텔을 결성해 온 것으로 의심되는 10여개 의약품 제조·유통업체를 입찰방해 등 혐의로 최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 업체는 광동제약‧한국백신‧보령제약‧GC녹십자 등 의약품 유통업체와 우인메디텍‧팜월드 등 제약사로 알려졌다. 해당 업체는 보건소와 정부부처에 백신을 납품하는 입찰에 참여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 의약품 조달사업과 관련해 입찰담합 등 불법 카르텔을 결성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들을 입찰방해 등 혐의로 압수수색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제약업체들이 조달청을 통해 보건소 등 국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백신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담합을 했다는 의혹을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조달청으로부터 입찰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일부 업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장을 접수해 장기간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구상엽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1년 6개월간 공정거래조사부장을 맡았다가 올 8월 옛 특수1부에서 이름을 바꾼 반부패수사1부로 옮겼다. 구 부장은 현직 검사로선 이례적으로 공정거래 분야로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검찰총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반독점국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윤 총장은 지난 7월 취임사에서 “시장 교란 반칙행위 등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취임 직후 구 부장검사를 반부패수사1부장으로 기용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영‧유아와 소아의 중증 결핵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인 BCG를 독점 수입‧판매하고 있는 한국백신을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국가 무료 필수 백신인 BCG 공급을 의도적으로 중단한 한국백신에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관련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BCG 백신 판매의 독점 행위를 지적했을 당시 발표한 자료. 업체가 피내용 백신 공급을 중단하자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 공정거래위원회]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BCG 백신 판매의 독점 행위를 지적했을 당시 발표한 자료. 업체가 피내용 백신 공급을 중단하자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하고 임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 공정거래위원회]

 문제는 이번 검찰 수사에서 대상이 한국백신을 넘어서 광동제약‧보령제약‧GC녹십자 등으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제약업체 관계자는 “보건소와 같은 정부기관에 공급하는 백신은 시장규모가 수천만원대에 불과한데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이 이번에 ‘입찰 방해’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공정거래법이 아닌 형법으로 수사를 할 수 있는 혐의”라며 “압수수색 대상 업체가 10여개에 이르는 '기획 수사'인 것 같아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제약업체 압수수색이 검찰이 지금 국면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대기업 같은 곳까지 전방위 압수수색을 하며 검찰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다른 관계자도 “제약업체 리베이트는 서울 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에서 주로하고 있는데 특수부로 불렸던 반부패수사부까지 나서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서부지검의 식품의약조사부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등과 같이 법무부가 폐지 내지 축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서에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앞서 대검이 없애기로 한 전국 검찰청의 특수부 4곳에 더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4곳 중 2곳 등 모두 37곳을 추가로 폐지·축소 대상에 포함시켰다.

 다만 한 수도권의 현직 검사는 “수사에서는 제보자와 신뢰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한 검찰청이 특정 분야에 전문이라고 해도 기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며 “법무부에서 이번에 직접 수사 분야를 정리하더라도 획일적으로 나눌 수 없는 사안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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