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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녹색지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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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뉘르부르크링(Nürburgring)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경주용 도로(서킷)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작품이라는 설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 당시 독일의 분위기에 히틀러가 개입한 정도다.

뉘르부르크링은 북쪽 서킷인 노르트슐라이페(Nordschleife·20.8㎞)와 남쪽 GP-슈트레케(GP-Strecke·5.1㎞)로 나뉘는데, 노르트슐라이페는 ‘녹색지옥(The Green Hell)’이란 별명이 붙는다. 73개에 달하는 급회전구간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도로로 불린다. 수많은 레이서가 목숨을 잃었고, ‘F1 그랑프리의 전설’ 니키 라우다가 76년 끔찍한 사고를 겪으면서 F1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의 성능을 시험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페라리 같은 수퍼카 업체부터, 현대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신차 개발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지(聖地)로 통한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의 랩타임(1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성능 자동차 회사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지난 9월 테슬라는 “모델S가 4도어 전기차의 비공식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한 달 전 포르쉐의 4도어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이 세운 기록(7분 42초)을 19초 앞당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록은 공식기록이 아닌 데다, 플레이드(Plaid)라 부르는 특수제작 차량이어서 포르쉐나 자동차 업계에선 무시한다.

기록 경신을 주장하는 건 자동차 산업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고 자존심을 건 승부여서다. 현대차도 고성능 브랜드 ‘N’의 성능 향상을 위해 뉘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을 하지만 랩타임을 공개한 적은 없다. 그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한 번쯤 알려주면 좋겠다. 언젠가 현대차가 뉘르부르크링의 랩타임을 경신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