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스텔스기는 레이더와 적외선·음향 탐지기 등에 포착되지 않는 은폐 기술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스텔스’는 은밀하게 조용히 이뤄지는 일이나 실체가 감춰진 무언가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 됐다.
일명 ‘비자금 통장’으로 불리는 스텔스 통장이 대표적인 예다. 스텔스 통장은 인터넷·모바일 등 전자금융 거래가 제한돼 조회가 불가능하고 예금주가 은행을 방문해야만 입출금이 가능하다. ‘스텔스 세금’도 있다. 납세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금을 일컫는다.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가 여기에 해당된다.
청와대는 정부와 국민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곳간’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1일 “곳간에 있는 작물들은 계속 쌓아두라고 있는 게 아니다.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려울 때 쓰라고 곳간에 재정을 비축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변인의 말이 무색하게 나라 곳간은 텅 비어가고 있다.
나라 살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올해 1~9월 26조5000원 적자다. 올해 1조6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2015년(-2000억원) 이후 4년 만이다. 정부의 통 큰 씀씀이에 2023년(49조6000억원)까지 적자 행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통합재정수지는 연금 재원을 적립하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포함해 일반적으로 흑자를 기록해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예산 중 이월과 불용은 최소화할 것”이라며 “예산을 남기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재정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대통령의 말에 낱알 한 톨까지 탈탈 털 기세다. (만약 있다면) 썩어가는 곡식이 가득한 대변인의 ‘스텔스 곳간’이 아쉬운 때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