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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변인의 ‘스텔스 곳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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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1974년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스텔스기는 레이더와 적외선·음향 탐지기 등에 포착되지 않는 은폐 기술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스텔스’는 은밀하게 조용히 이뤄지는 일이나 실체가 감춰진 무언가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 됐다.

일명 ‘비자금 통장’으로 불리는 스텔스 통장이 대표적인 예다. 스텔스 통장은 인터넷·모바일 등 전자금융 거래가 제한돼 조회가 불가능하고 예금주가 은행을 방문해야만 입출금이 가능하다. ‘스텔스 세금’도 있다. 납세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금을 일컫는다.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가 여기에 해당된다.

청와대는 정부와 국민의 눈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곳간’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1일 “곳간에 있는 작물들은 계속 쌓아두라고 있는 게 아니다.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려울 때 쓰라고 곳간에 재정을 비축해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변인의 말이 무색하게 나라 곳간은 텅 비어가고 있다.

나라 살림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올해 1~9월 26조5000원 적자다. 올해 1조600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 2015년(-2000억원) 이후 4년 만이다. 정부의 통 큰 씀씀이에 2023년(49조6000억원)까지 적자 행진은 이어질 전망이다. 통합재정수지는 연금 재원을 적립하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포함해 일반적으로 흑자를 기록해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예산 중 이월과 불용은 최소화할 것”이라며 “예산을 남기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재정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대통령의 말에 낱알 한 톨까지 탈탈 털 기세다. (만약 있다면) 썩어가는 곡식이 가득한 대변인의 ‘스텔스 곳간’이 아쉬운 때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