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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어민 추방, 헌법3조만 얘기하면 애로" 대법 판례 흔든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을 동해 NLL 해역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있던 배다. [뉴스1]

8일 오후 해군이 동해상에서 북한 오징어잡이 목선을 동해 NLL 해역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이 목선은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피 중 군 당국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이 타고 있던 배다. [뉴스1]

정부가 지난 7일 살인 혐의를 받던 북한 주민 2명을 강제 송환한 것을 두고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헌법 3조만 이야기한다면 많은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고위 당국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 주민을 어느 나라 사람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헌법 3조와 4조를 대체로 균형있게 접근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관계의 법적인 성격에 대해 가장 중요한 근거는 남북기본합의서 1조(남북 간 상대방 체제 인정)에 나와 있고,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라면서다.

북한 주민 추방 문제에 ‘헌법 4조’ 등장 

헌법 3조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즉 북한 주민들도 헌법 3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범주에 속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한반도를 규정하는 법적 근간이자 상징적 원칙이 헌법 3조였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탈주민을 수용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 주민 추방 논란을 설명하면서 헌법 4조를 언급한 건 헌법 3조의 무조건적인 적용이 쉽지 않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대신 헌법 4조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문구를 들어 통일의 상대인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남북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 관계에서 헌법 3조와 4조는 동시에 고려해왔다. 남북관계라는 건 늘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앞의 한 쪽만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조계 “대법원 판례 흔드는 발언”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당국자의 설명이 그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대법원,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다르다는 반박이 나온다. 송인호 한동대 법학과 교수는 “대법원과 헌재는 헌법 4조를 감안하더라도 북한이탈주민의 법적 지위에 대해 헌법 3조의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기본합의서 역시 신사협정에 불과하며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대법원은 판시하고 있다”며 “이를 남북관계의 법적 근거로 볼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 변호사는 “헌법 3조는 국적법·국가보안법의 근거 조항이고, 4조는 남북관계발전법·남북교류협력법 등의 근거 조항”이라며 “4조는 그야말로 남북 간 경제협력, 사회교류 등을 해야 하는 현실적 환경을 감안한 건데 헌법 4조를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 근거에 연결시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 당국자가 그간 대법원 판례를 흔드는 발언을 하는 게 맞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남북 관계에서 북한이 실체인 만큼 이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은 우리 국민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건 헌법 정신엔 맞지만, 현실은 국가 대 국가로 관계를 유지해온 게 그동안의 남북 관계”라며 “이걸 송두리째 부정하고 우리가 관할권만 행사하는 건 곤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2명의 흉악범죄자를 받았을 경우 현실적으로 우리 사법체계에서 처벌할 방법도 없는 만큼 추방 조치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 2명의 북한 송환과 관련해 변호사 등이 참여한 '정의로운 통일을 생각하는 법률가 모임'(정의통일법률모임)이 11일 서훈 국정원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을 형법상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뉴스1]

북한 주민 2명의 북한 송환과 관련해 변호사 등이 참여한 '정의로운 통일을 생각하는 법률가 모임'(정의통일법률모임)이 11일 서훈 국정원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을 형법상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뉴스1]

법적 근거 없는 추방이 남긴 숙제  

그럼에도 정부의 추방 결정이 국내외에서 북한이탈주민과 관련한 법적, 도덕적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는 추방을 결정하며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한 국가 안보적 차원의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북한이탈주민 수용시 명확한 근거 없이 국가 안보적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여기에 ‘헌법 4조’ 발언까지 등장하며 남북 관계의 헌법적 인식이 헝클어지고 자의적 판단 여지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해질 수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변호사는 “정부가 법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며 “법률적 쟁점이 많은데 5일 만에 보낸 건 정부 결정의 옳고 틀림을 떠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귀순 원칙이 흔들린 만큼 북한에선 내부적으로 남쪽으로 가면 추방된다고 선전할 것”이라며 “북한 주민에게 이번 사례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왼쪽)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왼쪽)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3일 강화도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 워크숍’에서 북한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요구 관련해 “남북 간 여러 차원에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아직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통지문을 보내 시설 철거 서면 협의를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실무회담과 공동 점검단 파견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서면 협의를 고수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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